◆…서울 신촌에 위치한 학자금상환(ICL) 상담센터에는 십여명의 직원들이 학자금상환 제도와 관련한 상담을 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은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센터 직원들은 웃으면서 응대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일부 민원인들은 욕설과 폭언을 퍼붓는 경우가 있어 상처를 받는 일도 많다고 한다. 어떤 민원인은 한 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놔주질 않아 다른 민원인의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해 힘들지만 일하다 어려운 점은 동료들과 국세청 학자금상환과 직원들과 차를 마시며 혹은 저녁 자리를 함께 하며 풀어나가고 있다.
"야, 이 xx아. 내 아들이 회사 짤리면 네가 책임질거야?"
수시로 전화해서 욕설을 퍼붓는 민원인 때문에 학자금상환 상담센터 직원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 악성민원인은 술에 취한 음성으로 상담센터 직원들에게 폭언을 쏟아냈고 마음 약한 젊은 직원들은 눈물을 훔쳐내기도 했다.
"법에 정해진대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도 이 민원인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상담센터 직원들이 법을 바꿀 수 있다면야 수백번도 바꿨겠지만 법을 바꾸는 것은 주무부처의 일이기 때문에 상담센터 직원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욕설과 폭언에 시달리는 직원들이야말로 가장 법을 바꾸고 싶은 이들이었지만 법을 개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법 개정을 맡고 있는 주무부처가 개정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하고 적극적으로 추진을 해야하지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부에선 법 개정을 하면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며 난색을 표했고 센터 직원들은 욕설로 눈물을 삼키고 폭언은 가슴에 꾹꾹 눌러담아야 하는 나날들이 지속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어느날 우연히 갖게 된 술자리가 이들의 가슴이 뻥 뚫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계기가 됐다.
◆…우연히 학자금상환 상담센터의 고충을 알게된 이후 국세청 학자금상환과 직원들은 상담센터 직원들과 수시로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이인기 학자금상환과장(왼쪽 첫번째)는 이순옥 상담센터 팀장(오른쪽 두번째)과 긴밀히 소통하며 제도의 주고객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다.
□ 술 한잔으로 나눈 소통…'정부 3.0'을 실현하다 = 학자금상환(ICL) 업무를 맡고 있는 국세청 학자금상환과 직원들은 업무를 하면서 일종의 고객이라 할수 있는 대학생들과 접촉할 일이 적은 편이었다.
대학생들과 접촉할 일이 적다보니 자연스럽게 고객들이 원하는 니즈(needs)를 파악하기 어려웠고 갈수록 일은 많아져 국세청에서도 인력을 대폭 충원해야 하는 버거운 상황이 됐다.
현장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느낀 국세청 학자금상환과 이인기 과장은 최일선에서 대학생들을 상대하는 상담센터 직원들과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올해 초 저녁식사 자리를 갖게 됐고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됐다.
센터 직원들이 눈물과 울음을 섞어가며 말했던 것은 악성민원인.
센터에 접수되는 민원 중 가장 많은 '원천공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이었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는 지난 2010년부터 시행된 것으로 대학생이 한국장학재단에 학자금 대출을 받고 졸업한 뒤 취업 등으로 소득이 생기면 국세청에 대출금을 상환하는 제도.
근로자가 된 대출자들이 학자금을 상환하는 방법은 월급에서 매달 일정액을 원천공제하는 방식.
이 경우 기업에선 학자금 상환업무로 인해 매달 경리업무가 더 늘어 신입사원들에게 눈치를 이만저만 주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는 직원 1~2명 때문에 일을 두 번 하게 돼 직원들에게 이를 빨리 해결하라고 독촉하기 일쑤였다.
악성민원인의 경우도 이 문제 때문에 비롯됐다.
중소기업에 취직한 아들이 "아버지, 학자금 좀 한꺼번에 갚아주면 안돼요? 회사에서 이것 때문에 일 많다고 빨리 해결하래요. 해결 안하면 회사 잘리게 생겼어요"라며 학자금 일시상환을 요구했고 한꺼번에 돈을 갚아줄 수 없었던 이 민원인은 틈만나면 상담센터로 전화를 해 화를 냈던 것이었다.
◆…우연히 나누게 된 이들의 소통이 민원인도, 센터 직원들도, 국세청 직원들도 모두 웃게 만들었다. 민원인은 문제를 해결해서 좋고 센터 직원들은 악성민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국세청은 인력감축 효과를 보는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왔다. 이인기 과장은 "상담센터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적극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 소통이 만든 기적…'일석삼조' 효과 =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는 대출을 받은 대학생이 취업 후 10년에 걸쳐 소액으로 나눠서 갚도록 만든 제도이기 때문에 매월 일정액을 원천공제하는 방식만을 고수해 왔다. 일시상환은 빌린 금액 전액을 한꺼번에 갚는 방법 밖에 없다.
근로소득이 아닌 종합소득세나 양도소득세, 상속이나 증여를 통한 소득이 생긴 경우에는 이들이 직접 학자금대출 상환금액을 신고하고 납부해야 했다. 이에 대한 민원도 상담센터 상담건수 중 2위를 차지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은 국세청 학자금상환과 직원들은 법 개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일부에선 '법 취지가 원래 소액으로 매달 내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제도의 주고객인 대학생들이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규제개혁이고 소통이라 생각했다.
학자금상환과 직원들은 수개월을 주무부처인 교육부와 기획재정부 예산실과 논의한 끝에 원천공제의 선납을 허용해주고 학자금상환을 신고제에서 고지납부제로 전환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23일부터 시작해 오는 12월1일까지 진행되는 입법예고를 거친 뒤 국회를 통과하면 내년 5월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근로자들은 더 이상 회사에 눈치를 보지 않고 최대 1년분을 미리 낼 수 있게 된다. 또 소득을 신고해야 하는 종소세, 양도세, 상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 신고를 하지 않아도 일정금액을 상환을 하도록 고지서가 나간다.
이렇게 되면 대출을 갚아야 하는 사람도 상담센터 직원도 더 이상 이 문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국세청 입장에서도 상당한 인력감축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5월에 있는 종소세 신고 때 근로장려금(EITC) 신청과 학자금상환 신고가 몰려 업무 과부하가 걸렸던 것이 완화될 수 있으며 신고율이 높지 않음에도 세무서마다 별도의 창구를 운영했던 인력도 감축시킬 수 있다. 근로자의 경우 매월 회사에서 원천공제납부를 잘 했는지 국세청에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이 업무도 줄어들 수 있다.
상담센터 직원들의 힘들다는 하소연을 그냥 듣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주무부처인 교육부 소관 법안을 적극 해결함으로써 대학졸업생들과 센터 직원은 물론 국세청까지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라는 정부 3.0의 모범사례인 셈이다.
개정안이 만들어진 후, 상담센터 직원들은 민원인들에게 "내년부터 법이 바뀐다"고 말할 수 있게 되면서 악성민원이 훨씬 줄어들어 일하기가 수월해졌다는 후문이다.
이인기 과장은 "이번 일로 현장에 답이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다시금 가슴 깊이 느꼈다"며 "센터 직원들의 하소연을 그냥 흘려들었으면 법 개정도 이뤄지지 않았을테지만 직원들이 다 같이 노력한 결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현장 직원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국민들의 불편을 적극 해소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