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개혁을 하려면 2년 이내에 해야 한다."
최근 조세전문가들의 내놓고 있는 한결같은 주문이다.
향후 2년을 지목하는 것은 '선거'가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선거가 있는 시기에는 각종 포퓰리즘이 판을 치기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는 의미다.
달리 말하자면 조세개혁의 걸림돌이 곧, 정치라는 것이다.
더구나 조세개혁의 경우 정당의 이념적 성향이 뚜렷하게 나뉘어 접점을 찾기 어려운 과제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다루는 세월호특별법 협상도 이렇게 진통을 겪는데 각 정당 지지층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조세개혁은 정당의 운명을 건 싸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이 같은 전망은 여야 국회의원들의 이념성향이 갈수록 분명하게 나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언론사가 조사한 '국회의원 이념성향' 결과에 따르면 16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이념격차가 1.7에 불과했으나 17대1.9, 18대 2.4로 커지다 19대 국회에 넘어와서는 3.2까지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 성장vs분배 이분법적 논쟁에 백년대계 '뒷전' = 성장과 분배의 조화는 국가 경제정책의 핵심과제임에도 우선순위를 두고 진보와 보수, 이를 대변하는 정치권은 끊임없는 논쟁과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보수진영을 등에 업은 정부·여당은 성장이 이뤄지면 분배는 저절로 이뤄질 수 있다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공평한 분배가 이뤄져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한국경제에 대해 "저성장·저물가와 과도한 경상수지가 병행하는 거시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성장에 방점을 둔 경제정책이 필수"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도 경제성장에 '올인'하기 위해 적자재정을 감수하는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당 또한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잠재 성장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규제를 혁파하고 정부 투자를 늘려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를 늘린데 따른 혜택이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정부 정책에 동의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정부 여당의 논리는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한국판 피케트보고서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결과 소득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것이다. 2012년 기준 소득하위 20%의 연평균 소득은 811만원으로 전년보다 50만원 늘어나는데 그친 반면 소득상위 20%는 1억417만원으로 전년보다 388만원 증가해 계층간 소득격차가 더 벌어져 낙수효과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새정치연합의 김성주 의원은 "현재의 경제위기는 성장지상주의의 폐해로 인한 양극화 및 내수부진, 공공성의 위기"라고 진단하고 "소득분배를 통한 복지정책이야말로 진정한 서민경제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정치권이 성장이냐 분배냐 이분법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경제학자들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세금을 통한 재분배가 유일하다는데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IMF(국제통화기금) 소속의 조나단 오스트리, 앤드류 베르그는 2014년 출간한 '재분배, 불균형과 성장' 보고서에서 "분배정책이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며 "분배와 성장은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라 경제성장을 통해 사회후생의 대폭적인 증가를 가져오는 반면 분배정책은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동력이 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이 여야로 나뉘어 지지층의 이해관계에만 몰입하며 평행선을 달리는 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건설적인 목소리는 공염불이 될 뿐이다. 이것이 조세개혁을 가로막는 최대의 복병이다. 조세개혁도 결국은 입법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감세 혹은 증세, 그리고 누구를 대상으로… = 조세개혁과 관련한 정치권의 논쟁은 구체적으로 초점을 좁혀 가면 갈수록 견해차가 벌어지는 게 문제다.
여당은 기업과 부자에 대한 세금은 감면하고 증세 효과가 큰 부가세율 인상과 소득 분위에 따른 부과대상을 확대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경제적 불균형 해소와 착한 경제성장을 위해 부자들의 세금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여당은 기업에 대한 세율 간소화와 함께 법인세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만우의원은 "기업에 대한 세금은 형평성이 중시되지 않기 때문에 3단계로 구분된 세율을 단일화하고 점진적인 세율 인하를 통해 투자촉진과 고용증대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법인세율 단순화와 세율인하는 소수의 대기업이나 재벌기업만을 위한 특혜로 중소기업에 부담이 가중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은 "전체 기업의 0.3%에 불과한 대기업이 지원효과의 58%를 누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면서 "법인세 인하보다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에 대한 직접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2012년 OECD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기업의 세수 비중은 3.99%로 OECD 평균 3.0%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14년 글로벌 회계법인 KPMG 조사에 의하면 주민세를 포함한 한국기업의 세율은 24.2%로 OECD평균 24.11%와 거의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기업에 대한 세율은 OECD국가의 중간 수준이지만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기업을 제외한 기타 세목의 세금 비중이 낮은 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정부·여당은 증세를 위해 소득세 부과 대상자를 확대하고 광범위한 세수 증대효과가 기대되는 부가세율 인상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은 "부가세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감면제도가 최소한에서 유지돼야 한다"며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인상이 필요하다면 세율인상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선진국 사례를 보면 조세형평성 높은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며 "조세형평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서 서민들에게 부담이 가중되는 부가세 인상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부가세를 통해서 복지지출을 하는 나라는 보편적 복지를 하고 있다"며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세부담을 높이는 것은 반대"라고 못박았다.
OECD가 밝힌 2012년 기준 한국의 GDP에서 소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8.36%로 OECD평균 11.20%에 비해 2.84%p 낮았으며 자료를 제출한 30개 국가 중 5번째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별소비세와 일반 소비세를 제외한 순수 부가세율도 2012년 기준 4.4%로 OECD평균 5.9%에 비해 낮았으며 32개국 중 하위 5번째로 소비세와 같은 양상을 보여 인상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국회는 일손 놓고 정부는 앞서 나가…국가 재정위기 자초 = 그러나 이러한 통계자료들도 정치권으로 들어가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통계수치 가운데 각 정당이 주장하는 내용에 부합하는 것만 따로 모아 서로 옳다고 우기는 형국이다.
정치권이 대립으로 허송세월 하는 가운데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려는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수십년이 지나도록 고장난 레코드판이 헛돌 듯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끝없는 평행선을 달려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10년 이상 저성장세에 머물고 있고 전망도 밝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제1차 사회보장기본계획(2014~2018년)'을 확정짓고 5년간 316조2000억원, 매년 63조2400억원을 복지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치권은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기 위해 움직일 생각도 없는데 정부만 앞서가고 있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이 적자재정 편성이다. 국가 재정위기를 자초하고 있는 셈이다.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는 "저성장 기조에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복지비용 증가로 재정압박이 점점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문제가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기 전에 조세제도를 개편하여 재정건전성과 성장잠재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