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국감, 정책 비판 사라지고 이슈 질타만

모뉴엘 부실 대출, 은행 횡령, 당국 고위직 강연료 등 질타

협회·학회 방만 경영 문제 계속돼…자료 제출 거부 버티기

가계 부채·지배 구조 등 근본적 문제 해결책 보이지 않아

정책 감시는 사라지고 특정 이슈에 연연해 비방이 난무하는 국정감사가 올해에도 계속됐다.

27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종합감사를 진행한 가운데, 정무위원들은 IT회사 모뉴엘의 사기 대출과 은행권 횡령 등 금융 사고와 관련한 이슈에 대해 주로 질의했다. 금융 당국 고위직의 강연료 문제나 하나은행·외환은행의 독립 경영 약속 위반 등 금융정책과 관련 없는 이슈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시간이 소요됐다.

가계 부채와 금융회사 지배 구조의 문제, 금융권 일자리 등 금융 산업 전반에 대한 정책 비판과 대안을 고민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협회와 학회의 방만 경영 문제가 논란이 됐지만 피감 기관이 자료 제출을 거부해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또한 정무위원들은 감사 내내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며 국감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모뉴엘 사기 대출, 국책은행들 수천억 부실 예고= 올해 국감에서 새로운 이슈가 된 문제는 모뉴엘의 사기 대출이다. 모뉴엘은 매출 1조원을 기록하다가 돌연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보증을 제공해 KDB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약 7000억원의 거액 대출을 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2년 전 국세청이 모뉴엘에 대해 세무조사를 했을 때 세금 탈루액만 추징하고 금융 당국에 가공 매출로 부당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이에 대해 "송구스럽다. 모뉴엘 사태는 대한민국 금융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고 말했다.

홍기택 KDB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300억원을 대출할 당시 모뉴엘의 신용평가사 자료를 보지 못했다. 미진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상규 통합진보당 의원이 모뉴엘 관련해 현장에 방문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한 데 대해 홍기택 회장과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없다"고 답했다. 권선주 은행장은 "심사팀에서 신용조사를 위해 1년에 한번 본사에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유의동 새누리당 의원은 시중은행 직원들의 횡령 및 유용 금액이 최근 5년 사이 1000억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외환은행은 횡령·유용 금액이 509억원을 기록해,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유 의원은 "금융기관이 고객의 돈을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것은 금융 산업의 기반이 되는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고 질책했다.

이날 국감 증인으로서 출석한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미국 본점에 수천억원의 경영 자문료를 낸 것과 관련 세금을 적게 내려는 의도라는 의혹을 샀다.

이상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2년 영업이익이 1년 사이 반토막 난 2600억원을 기록했는데 경영 자문료는 2배인 1367억원을 지급했다. 실체도 없는 경영 자문 용역비를 과다 계상한 것은 배당세와 법인세 납부 금액을 줄이기 위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하영구 씨티은행장은 "경영 자문료는 이익과 관계없이 자산 규모와 비용 등 객관적 기준에 의해 회계법인이 산정하다"고 해명했다.

김기준,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하나·외환 은행의 5년 독립 경영 합의서에 사인한 것과 관련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국감에 출석해 김석동 전 위원장이 합의서에 서명한 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개된 사진에 의하면 사실이 아니다"며 "이는 전 금융지주 회장으로서 상식에 맞지 않는다. 위증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외부 강연을 통해 수천만원의 '용돈'을 챙겼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외부 강연 중 정무위 소관 부처와 기관 직원의 강연료는 가장 많으며 4억원을 넘겼다. 금융위 정원 254명이 339회의 외부 강연을 했고, 1인당 평균 1.3회의 외부 강연을 한 것으로 집계된다.

기관장 중에서도 신제윤 위원장이 가장 많았다. 신 위원장은 지난해 4월 취임 이후 지난달까지 45회의 외부 강연을 실시해 2000만원 넘는 강연료를 챙겼다. 최수현 금감원장도 42회의 유료 강연을 진행해 1645만원의 강연료를 받았다. 

김 의원은 "강연료 명목으로 손쉬운 용돈벌이를 했거나 공인된 떡값을 받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난했다.

□가계 부채 문제, 정부가 더 키웠다?= 1000조원 넘는 가계 부채가 한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는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가계 대출 규제를 완화해 문제를 더욱 키웠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7월 24일 부동산 활성화 정책을 위해 LTV(담보대출비율), DTI(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완화했다. 당초 과도하게 빚을 내 주택을 구입한 하우스 푸어(house poor)를 막기 위해 도입한 규제이다. LTV·DTI 규제 완화 이후 8월 한 달 동안 가계 대출은 5조4000억원이 증가했고, 주택담보대출은 4조7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5%, 135% 증가했다.

이학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신규 대출을 통해 기존 채무를 갚고, 생계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가계 부채 규모를 늘린 것을 의미한다"며 "가계 부채의 양적 확대와 더불어 가계 부채의 질 또한 악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식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LTV·DTI 규제 완화는 결국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신규 수요만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서민들의 가계 부채를 늘게 하고, 주거 불안을 심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신제윤 위원장은 "가계 부채가 리스크 중 하나이다. 소득 1분위(소득 하위 20%)의 가계 부채가 심각하다는 것이 문제인데, 금융 쪽에서만 해결하기 어렵다. 기본은 경제성장을 통해 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학영 의원이 영국 금융 당국 FCA의 대부업 규제 정책을 따르는 것을 제안한 데 대해 신제윤 위원장은 "영국은 이자율 상환이 없고 100% 이상 받을 수 없는 제도를 택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는 몇 년씩 이자를 안내는 경우가 있어 도덕적 해이와 성실 상환자와의 공정성 때문에 영국 제도를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답했다.

□자료 제출 논란 계속, 국회·정부 힘겨루기= 학회의 연구비 증빙 자료와 관련해 김기식 의원은 "금융위, 금감원의 용역 중 70% 이상은 수의계약이고 1억원 넘는 경우도 21건이다. 이에 대해 아무 증빙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고 따졌다.

또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자료를 주지 못한다고 했는데 사적인 용역이 아니지 않나. 국민 세금을 공으로 쓰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피감 기관들은 끝내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한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좀 너무한 게 아닌가 했다. 학회에서는 절대 연구비와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것이다"며 우려했다.

지난 17~18일 진행된 1박2일의 국외 국감과 관련해서는 이날 단 한 차례의 질의가 있었다.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번에 국외 국감을 가보니 일본에서는 신용 등급 때문에 카드 발급을 못받고 있다. 외국은 신중한데 우리는 전 국민이 쓰고 있지 않나"라며 우려했다.

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국외 국감은 놀러 간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또 정무위원들의 감사 태도도 논란이 됐다. 오후 감사가 시작된 지 1시간이 넘게 지나도록 전체 위원 23명 중 절반도 안되는 11명만이 국감장에 복귀했다. 이에 대해 한 피감 기관 관계자는 "위원들이 늦게 올수록 우리는 더 좋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