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또 소잃고 '뒷북 보안'

농협 무단인출 사고 '파장'

농협 통장에서 1억 2000만원이 무단 인출되는 금융사고를 계기로 시중은행들이 보안 강화에 나서고 있다. 자칫 이와 유사한 사고라도 터지면 고객들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 각종 인터넷 포털 게시판엔 은행들의 보안시스템을 불신하는 글들이 적잖게 올라오는 상황이다.

다만 은행들이 금융사기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본인확인 절차를 강화하는 등 결과적으로 거래단계를 늘리면서 일반 소비자들의 불편이 더 커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안전을 위해선 어느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는 게 은행들의 생각인데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권 “금융사기 막아라” 잰걸음

이번 농협 금융사고는 아직 정확한 사고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농협에 갖춰진 금융사기 탐지시스템이 단기간에 수십 차례 돈이 빠져나가는 의심 거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농협의 보안시스템이 허술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여기에 농협은 지난 4월 텔레뱅킹 1일 최대 이체 한도를 50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대폭 줄였지만 새 규정은 이번 금융사고를 겪은 피해자에게 적용되지 않았다.

시중은행들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보안시스템 구축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현재 시중은행 가운데 부정거래를 잡아내는데 성능이 가장 뛰어난 FDS(이상거래 탐지시스템)장치를 갖춘 곳은 신한·하나은행 두 곳에 불과하다.

FDS 시스템은 과거 거래내역을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모든 거래를 분석해 의심거래를 걸러낸다. 이번에 농협에서 터진 금융사고처럼 한 번도 이체되지 않은 계좌에 돈이 입금되거나 단기간에 수십 차례에 걸쳐 이체를 시도하면 일단 부정거래로 보고 거래를 정지시킨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 시스템이 구축된 뒤 부정거래가 확연히 줄었고 사기조직이 부정 이체를 시도해도 곧바로 적발돼 피해금액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우리·국민·농협은행은 연말까지 이 시스템을 장착하고 기업은행은 내년 상반기까지 시스템 구축을 완료할 방침이다. 기업은행은 이와 별개로 파밍사고를 막기 위한 자체 보안시스템을 마련해 이달 중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은행들은 현재 500만~1000만원 수준인 텔레뱅킹 최대 이체 한도 역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텔레뱅킹 금융사기 구멍, 금감원 대책 마련

이번 사고를 계기로 텔레뱅킹 거래가 금융사기에 취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본인인증을 거쳐야 하는 인터넷뱅킹과 달리 텔레뱅킹은 이런 과정 없이도 이체가 가능하다. 인터넷뱅킹에 밝지 않은 나이 든 중장년층이 주로 텔레뱅킹을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해 은행들이 텔레뱅킹에는 따로 인증절차를 마련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사고 정황을 면밀히 분석한 뒤 필요하면 텔레뱅킹 금융사기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전산담당 임원은 “금융사고를 막으려면 이체한도를 대폭 낮추거나 본인인증을 강화하면 되겠지만 이렇게 되면 소비자 불편을 커지게 된다”며 “보안을 강화하면 편리성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