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저금리정책을 본격 시행한 시기는 2001년. 금리 인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 역시 2000년대 초반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경제는 과거 일본이 겪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질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일본은 1991년 연 6%였던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해 1999년 0%대까지 내렸다. 기업들은 경기 침체에 대응해 설비투자를 줄이고, 차입금 갚는 데 잉여 현금을 사용했다. 일본의 금리 인하 정책은 경기를 살리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잃어버린 20년'을 가져왔다.
미국의 저금리정책 역시 일부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 받는다. 2000년 IT 거품이 붕괴되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기준금리를 2년 만에 연 6.5%에서 1.25%로 내렸다. 또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는 우리와 비슷한 대출 규제 완화 정책이 발단이 됐다.
□ 금리정책 효과 소진, 부채가 소비 억누른다 =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999년 이후 4년 동안은 저금리로 인해 소비와 투자가 느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당시 성장률이 5~6%까지 올랐다"며 "그러나 2004~2005년 이후 경기부양 효과가 사라지고 2008년 이후에는 오히려 가계 부채로 인해 이자 부담이 소비를 억누르는 상황이 계속됐다"고 진단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저금리정책이 소비를 증진시키는 효과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며 "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를 줄이고 은행의 건전성을 강화하도록 강하게 관리 감독해야 하는데 문제는 손 놓고 있다가 결국 채무불이행 위험을 키운다는 점이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저금리정책을 계속한 시기, 이때 많은 경제학자들은 거품경제를 우려하며 금리를 다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준금리는 결국 0%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금리를 낮추면서 집을 살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부동산 투자에 동참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는 신용이 부족한 저소득층에게도 선수금(Down payment) 없이 집을 살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앴다. 이 부동산 정책이 결국에는 대량 연체를 야기했고 미국 경제를 위험에 빠뜨렸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LTV(loan to value ratio), 즉 주택 담보를 인정하는 비율을 높여 대출 한도를 늘린 것과 비슷하다.
□ 장기 불황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상당수의 경제 금융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형 장기 불황의 전철을 밟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상황이 일본의 장기 불황과 다른 점은 달러를 기반으로 한 발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보다 발권력이 더 약한 한국은 훨씬 심각한 장기 불황을 겪을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증권정보 제공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의 설비투자액은 지난해 2분기 29조1000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11.6% 줄었다. 기업의 위축된 투자 심리를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경우 1992년과 1993년에 설비투자 감소율이 10%를 초과했다.
또한 지난해 국내 회사채 발행 잔액은 약 192조원, 1년 사이 약 1.4%가 줄었다. 발행보다 상환이 많았다는 의미이다. 발행 잔액이 감소한 것은 2004년(-3.9%) 이후 10년 만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디스플레이, GS칼텍스, 삼성증권, 대우조선해양, 현대제철, 우리금융, 현대백화점, 기아자동차 등 대기업 약 20곳이 발행 없이 1000억원 이상의 만기 도래 회사채를 현금으로 상환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 9월 기준 178조6000억원으로 4개월 동안 1조2000억원(0.7%) 감소했다. 지난해 기준금리가 두 차례 인하된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장 금리를 인상하는 방법보다는 투자 활성화를 촉진하고 가계 부채를 관리하는 정책이 우선시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윤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금리 인하 혹은 인상이 대출과 투자로 이어지는 경로가 원활할 수 있도록 신용 경로를 만지는 작업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고 조언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인상과 같은 거시적인 대책보다는 저소득 계층의 가계 부채 급증을 막기 위한 일시적 대책이 더욱 적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