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15분. 겨울이라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 아침, 애널리스트 A는 벌써 회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7시 30분에 시작하는 모닝 미팅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출근 후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만끽할 시간도 없다. 증권·보험 섹터 담당인 A는 회의 시간 30분 동안 금융 관련 정보 보고와 주가 흐름 분석 자료를 발표한다.
예를 들어 전날에는 미래에셋증권이 타 증권사 지분을 매입하기로 공시했고, 이로 인해 미래에셋증권 주가가 어떻게 될 지 정보 보고를 하는 식이다. 오늘의 추천 종목은 한국금융지주다. 장이 열리는 9시부터 5시까지의 업무 시간 중에는 콜, 기업 방문, 세미나를 주로 하며 남는 시간에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자료 준비에 숨 돌릴 겨를이 없다.
애널리스트는 '증권사의 별'이라고 불릴 만큼 대학생들 사이에서 선망의 직업으로 꼽힌다. 주식이나 파생상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베일에 가려진 업무 영역, 높은 연봉 때문에 화이트칼라의 대표 직업으로 통한다. 범접할 수 없는 애널리스트의 세계,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요즘 '잘 나간다는' 애널리스트 A를 만나 그의 일상과 솔직한 속내를 들어봤다.
Q. 애널리스트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경영학과에는 투자 동아리가 활성화 돼 있는데, 모의 투자를 하고, 포트폴리오 모델을 만들곤 했다. 어떤 기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때 전자공시 시스템만 이용해서는 해당 기업이 좋은 기업인지 나쁜 기업인지 판단하기에 한계가 있다. 증권사 보고서를 많이 참고하는 과정에서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됐다. 환경 때문에 자연스럽게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접하게 됐다.
Q. 학교는 어느 곳을 나왔나.
= 미국에서 대학교를 다녔다. 때문에 투자 동아리가 한국보다 더 활성화 됐던 것 같다. 모의 투자는 직접투자는 아니고, 클래스 모의 투자를 했다. 미국은 모의 투자를 하는 사이트가 있는데 그 곳에서 직접 짠 포트폴리오를 활용해 수익률 경쟁도 하고, 수익률이 좋으면 상도 받았다. 한국의 운용사가 투자금을 운용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Q. 한국 증권사에 입사한 과정은.
= 2011년 말 대학교를 졸업했는데 미국에서 2008~2009년 금융 위기가 터졌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월스트리트 경기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학교 선배들은 월스트리트에 취직했지만, 내가 졸업할 때는 진입이 더욱 힘들어졌다. 내국인도 채용하기 힘든 상황인데 미국 증권사가 외국인을 고용하려면 정부에 세금을 추가적으로 내야 했기 때문이다. 입사가 매우 힘들어졌고,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 후로 여러 차례 한국 증권사에 지원했다.
Q. 증권사 리서치센터 입사 전 준비한 것은 무엇인가.
= 입사 전, 막연하게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들어가려면 스펙(specification)과 학벌이 좋아야 하고, 금융 관련 자격증도 몇 개씩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리서치 입사 관련 카페가 있는데 고학력자들이 자신의 스펙을 평가해 달라고 올리곤 했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고(高)학력인데 떨어졌다는 글을 보고 '진짜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해서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Q. 한국 증권사가 요구하는 스펙은 정말 '고학력'인가.
= 하지만 막상 증권사에 입사해보니 달랐다. 입사 동기는 지방 대학 출신으로 자격증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투자 동아리 활동을 했던 경험이 많았다. 그때 고학력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 실제로 나는 CFA(Chartered Financial Analyst) 자격증도 1차만 있지만 가산점이 됐다. 보조 애널리스트(RA)가 되기 위해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성실함'과 '눈치 빠름'이다. 상급자가 데이터를 정리해 달라고 하면 데이터가 어디에 쓰일지 미리 생각해보고 그 방향대로 정리하는 센스 말이다. 사실 미국 주가가 왜 빠졌는지 몰라도 된다. 숫자에 대한 이해도가 있고, 엑셀(excel)을 잘하면 좋다.
Q. 애널리스트는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출신이 많은가.
= 경제학, 경영학 등 상경 계열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문학과를 나와서 CFA 3차 자격증까지 따 오신 분도 있으시고, 다른 업종에 있다가 증권사 리서치센터로 오신 분도 있다. 예를 들어 공대를 나와 철강 업종에 종사하다가 철강 분야(섹터) 애널리스트를 하는 식이다. 경력과 전공은 다양한 것 같다.
Q. 주식을 평가하거나 기업을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 기업의 성장성이 가장 중요하다. 증권·보험 산업은 이미 너무 성숙해 성장성을 갖기가 어렵다. 개인적으로 한국금융지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유는 먼저 단독금융지주로 계열사에 속해 있지 않아서 의사 결정이 민첩하다. 금융지주라고 하면 은행 계열이 많은데, 증권 중심의 단독 금융지주라 의사 결정이 빠른 것이다. 또 회사가 장기적인 ROE(Return on Equity·자기자본이익률) 등 수익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4개 자회사를 가지고 있고, 이번에 한 개의 자회사를 또 만들었는데 각각의 자회사의 역량이 뛰어나고 비용도 헛되게 쓰지 않는다.
Q. 애널리스트의 성과는 어떠한 방식으로 평가 받나.
= 리서치센터는 자료를 생산해내는 곳이고, 법인영업팀이 따로 있다. 애널리스트가 생산해 낸 자료를 기반으로 법인영업팀이 기관투자자를 만나 투자 관련 영업을 한다. 영업이 성사되면 기관 쪽에서 우리 증권사 계좌로 주문을 하고 이것이 수수료 수익으로 잡힌다. 이로써 직접적인 개인 성과를 따지기보다 실적을 추정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개인 성과는 정성평가와 정량평가 두 가지로 점수가 매겨진다. 정성평가는 보고서의 수준과 고객 응대에 있어 브로커의 피드백으로 결정된다. 정량평가는 콜, 세미나, 기업 IR(Investor Relation)팀 방문 횟수와 발표한 보고서의 양으로 평가받는다. 또 간접적으로는 언론사에서 선정하는 애널리스트 순위에 따라 평가가 매겨지기도 한다.
Q. 업무량이 많은데 여가를 즐길 시간이 있나.
= 주말에도 항상 출근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여가 시간을 낼 수 없다. 모든 스케줄을 시니어 애널리스트에게 맞춰야 하는 RA 때는 일이 더 많았다. 상사가 야근하기 좋아하는 스타일이면 함께 야근하고, 주말에도 매번 출근했다. 애널리스트 데뷔를 한 지금은 스케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니 시간을 낼 수 있지만 퇴근 후 여가를 즐기거나 무엇을 따로 배우기는 어렵다. RA 생활을 대형 증권사는 보통 2년 정도 하지만 중소형사는 사람이 많지 않고 빈 섹터가 많아 빨리 데뷔하는 편이다. (나는) 1년 만에 RA를 뗐다.
Q. 기업 방문은 어떻게 진행되나.
= 현재 증권·보험 섹터를 맡고 있다. 증권사는 실적을 분기별로 발표하지만, 보험사는 월마다 발표한다. 실적을 발표하기 전에 해당 기업 IR팀에 가서 회사 실적이 어떻게 나올지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한다. 탐방을 한번 다녀오면 전화하거나 신문지면에서 보는 것보다 기업의 상황을 더 잘 알 수 있다. 그것을 토대로 프리뷰 보고서를 쓴다. 스몰캡 부문은 정보를 해당 기업 IR팀의 인터뷰에 의존하는 정도가 강하지만, 증권과 같은 금융 분야는 시중에 나와 있는 데이터가 많아 IR이 아니더라도 실적을 추정할 수 있다.
Q. 담당 분야는 어떻게 결정되나.
= 공석을 채우기 위해 지명될 수도 있고, 몇 개 섹터가 비어 있다면 본인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 때문에 지원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시작할 때부터 금융 섹터 RA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금융을 맡게 된 케이스이다.
Q. 애널리스트는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연봉은 연구원마다 다 다르다. 오히려 격차가 너무 크다. 나는 불과 몇 달 전까지 RA를 하면서 대졸 초임 연봉 수준, 업계 최저 연봉을 받았다. 또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계약직이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로 데뷔해 실적을 잘 올리면 연봉은 그에 따라 상응해 오르는 '정직한' 직업이다.
Q. 애널리스트의 수명은 짧다는데.
= 학교를 늦게 졸업해서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 편이다. 2012년 9월에 입사해 2년 차이지만, 벌써 30대 초반이다. 최근에는 '내가 여기서 10년을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계약직이기 때문에 불안하다. 또 업계가 역동적이어서 은행처럼 65세까지 다닐 수 있는 직장이 아니다. 노후가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더불어 업무량 때문에 결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걱정도 있다.
Q. 5~10년 후를 바라보는 계획이나 포부는.
=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어서 행복하다. 이 일을 앞으로 할 수 있는 한 계속 하고 싶다. 5년의 목표라면, 현재 증권·보혐 분야를 맡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성숙한 산업이기 때문에 다른 업종을 맡아 보고 싶다. 제조업 등 역동적인 섹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