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에서 국장을 역임하다 최근 옷을 벗은 전직 공무원 K씨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공직자 취업심사에서 ‘취업제한’ 결정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현역시절 업무와 아무 연관성 없는 사업을 하려 했던 K씨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그는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하려고 사표를 냈는데 취업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며 당혹스러워했다. 재취업이 좌절된 K씨는 20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며 쌓은 노하우를 써먹지도 못하고 졸지에 ‘백수’ 신세가 돼 버렸다.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 거세지면서 공직자의 퇴직 후 재취업이 ‘낙타 바늘구멍 뚫기’ 만큼 어려워졌다. 현행법상 현직 시절 업무와 관련이 없으면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거쳐 취업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심사 기준이 엄격해진 탓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실제로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지난해 심사를 진행한 260건 중 51건에 대해 취업 제한을 결정했다. 취업제한율은 무려 19.6%에 이른다. 이는 과거 3년 간 취업제한률(6.7%)의 3배 가까운 수치다. 오는 3월 31일부터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취업제한은 한층 더 강화된다. 취업제한 기간은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나고 업무 관련성도 근무 부서가 아닌 기관 전체로 확대된다. 취업제한 기관도 시장형 공기업과 사립대, 사회복지법인까지 포함된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관가에서는 박사학위 취득 열풍이 불고 있는 실정이다. 퇴직 후 취업할 수 있는 곳이 사실상 대학교 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인생 2막’을 위해 벌써부터 학위 취득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한 공무원은 “박사 학위를 취득하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라며 “다들 퇴직 후 삶에 대한 걱정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외 연수를 신청하는 공무원들 사이에선 경영전문대학원(MBA) 대신, 일반대학원을 신청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기업 진출이 막힌 상황에서 더 이상 MBA가 필요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일반대학원에서 경제학 경영학 등의 석·박사 과정을 밟으려는 공무원이 많아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