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m 앞에서 우회전 하십시오"
초행길의 우 대리. 3D 네비게이션에서 흘러나오는 상냥한 안내 멘트를 듣고, 실물 같은 화면을 수시로 체크하며 운전하지만 길을 계속 잘못 든다.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이 길이 맞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방향을 잘못 잡을 때도 있고, 길을 지나친 후 멘트가 한 박자 늦게 나올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 대리는 잠시 차를 세운 뒤, 종이 지도를 펼쳐놓고 방향을 다시 잡아 본다.
초보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투자 트렌트를 읽고 마음에 쏙 드는 기업을 골라 재무제표를 열심히 분석해 보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금쪽같은 내 돈이 자칫 잘못하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다. 이럴 때 종이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애널리스트의 보고서이다.
풀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 직원들은 고객에게 사야할 종목을 추천해 준다. 고객을 위한 추천 종목 리스트는 정확히 말해 증권사 연구소의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것이다.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예상 실적 등 관련 정보를 분석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은행·보험·증권 등 맡은 분야가 나눠져 있다.
이들이 기업 분석 자료를 얻는 방법은 다양하다. 주식 및 사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홍보하는 기업의 IR(Investor relation)팀 담당자를 만나거나 공장 실사 등 기업 탐방을 하기도 하고, 시장에 공시된 자료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모은 자료를 종합분석해 매수 혹은 매도 의견을 낸다. 참고로 우리나라 증권사 보고서에 보유(hold) 의견을 낸 경우 매도와 동급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매수 추천 종목 리스트나 보고서를 각 지점의 직원들에게 보낸다. 리스트는 보수적인 투자자를 위한 종목, 공격적인 투자자를 위한 종목, 배당금 지급 종목 등 다양하게 분류돼 있다. 지점을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증권사의 HTS(Home Trading System), MTS(Moblie Trading System)을 개설한 후 개인적으로 보고서나 리스트를 받아볼 수도 있다.
투자자들이 보고서를 참고할 때는 한 개의 증권사 보고서만 볼 것이 아니라 여러 개 증권사 보고서를 놓고 비교·분석해 보는 것이 좋다. 전문적인 보고서라 하더라도 사견(私見)이 담긴 데다 보고서가 개인투자자에게 도달하기 전 기관투자자에게 먼저 전달돼 투자 유치를 유도하는 '미끼'로 사용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고서를 볼 때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봐야할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매수·매도 의견과 목표주가이다. 특정기업에 대해 여러 증권사가 내놓은 보고서의 매매 의견이 일치하고, 목표주가가 근접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더욱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지난 2월 11일 쏟아져 나온 서울반도체에 관한 증권사 보고서를 예로 들어보자. 서울반도체의 지난해 4분기 매출액은 전 분기 대비 7.6% 감소한 2126억원, 영업이익은 319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조명부문 매출만 자동차용을 중심으로 소폭 증가했다.
위의 그림에서 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을 보자. 메리츠종금증권은 '매수' 의견을 취했고, 목표주가를 3만원으로 유지했다. 2014년 4분기 실적이 좋지 않지만, 성장성에 점수를 크게 매겼기 때문이다. 지목현 메리츠종금 수석연구원은 2015년 국내 완성차의 주간주행등(DRL) 의무화로 LED부문의 성장세가 지속되고 스마트폰 BLU용 LED 부문 해외 대형 고객사 공급 본격화를 이유로 장밋빛 미래를 점쳤다.
하지만 NH투자증권은 '보유' 의견을 냈다. 목표주가는 1만8000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서울반도체의 추후 6개월까지의 실적을 부정적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김혜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4분기 LED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재고자산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데다 중국 패키지 업체의 구조조정 진행으로 실적 회복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이렇게 상반된 의견이 나올 때 주식을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투자자의 몫이다. 해당 기업의 미래와 경제 상황을 믿고 투자할 것인지, 매입 시기를 늦출 것인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단, '밸류에이션이 낮다' 혹은 '저평가 됐다'는 보고서 속 문구는 주식이 오를만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빛을 발하지 못했다는 의미임을 명심하자.
보고서에서 다음으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예상 주당순이익(EPS/Earning Per Share)과 예상 주가수익비율(PER/Price Earning Ratio)이다. EPS는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당기순이익)을 그 기업이 발행한 총 주식수로 나눈 값이다. 기업의 가치가 한 주당 반영된 값이며, 전년 대비 수치로 나타낸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주가가 1주당 수익의 몇 배가 되는가를 나타낸 수치다. 시장 대비 가격이다.
이 밖에 52주 최고가 및 최저가 항목을 통해 주가의 등락폭이 얼마나 큰지 살펴볼 수 있다. 등락폭이 크다는 것은 주가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보고서를 통해 시가총액, 평균거래대금(60일), 배당수익률, 외국인지분율 등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주가그래프를 통해 손쉽게 주가의 흐름을 살펴보고, 간략하게 정리한 재무제표를 통해 해당 기업의 매출액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잡아주는 지도와 같다. 지도에 나와 있는 여러 갈림길 중 어느 길을 선택할 지는 투자자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몫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