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한 시대를 살다간 거인들
조계산 송광사. 그곳은 봄이 되면 빛나는 하늘과 맑은 물이 계곡을 적신다. 겨울이 유난히도 추운 탓이었을까, 봄이 되면 조계산 산록을 뒤덮은 푸릇한 신록과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유난히 노스님들이 많았던 송광사. 전남 승주가 남해와 잇닿은 해안지방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곳에는 산죽과 모란이 많았다.
젊은 시절 그곳에 머물었던 나는 우연찮게 불교잡지를 보다가 요가난다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영혼의 자유스러움과 생명이 가진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던 요가난다의 글이 유난히도 밝고 따뜻했던 봄 햇볕이 앉아있던 툇마루와 책 페이지를 환하게 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송광사의 방장(方丈)스님은 구산 스님이셨다. 소탈하고 격의 없는 언행으로 누구에게나 친근한 분이었다. 스님의 수행역사가 말해주듯 뛰어난 수행심과 선지식을 체득하고 있었으며 자신감과 법력이 그를 소탈한 농부 같은 사람으로 여기게끔 하셨다.
구산스님은 70년대말 미국의 히피문화가 성했을 때 미국 LA 등을 방문하게 된다. 당시의 세계 조류는 베트남 전쟁, 핵의 공포 등으로 말미암은 반전운동, 동서양 문명의 만남, 새로운 정신문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관심 고조 등이 한창이었다. 일본의 스즈끼 선사,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 마하리쉬 등이 미국인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구산스님도 이러한 서양인들의 정신적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동양의 선지자로 인정받아 수백 명의 외국인 제자들이 한꺼번에 불문에 들었다. 이때 요가난다와 구산스님이 만나게 되었는데, 이는 그러한 시대적 인연으로 이루어졌다.
요가난다는 요가와 명상을 통해 육체와 감정, 세계의 환영에서 벗어나 본질을 꿰뚫는 직관을 소유함으로써 궁극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요가난다는 법정 스님,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
그의 아이패드에는 단 한권의 책이 저장되어 있었는데, <요가난다, 영혼의 자서전>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생전에 자신의 추모일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부탁한 책이기도 하다.
명상을 통해 터득되는 직관과 통찰의 지혜는 잡스에게 커다란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잡스의 인문학적 감각과 과학적 재능이 결합하여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제품들이 세상에 태어났다. 신세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적 생활의 끈을 놓지 않으며 살았다.
영혼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요가난다. 그리고 또한 욕심을 버리는 게 가장 큰 견성(見性)이라고 가르치신 구산스님. 그리고 직관이 내 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던 스티브 잡스. 지금은 모두들 가고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영향을 주고, 한 시대를 살고 갔던 거인들이 이제는 역사와 문화의 한 페이지로 사라져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