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지난 20년간 누적적자로 법인세를 자진납부한 실적이 미미할 정도로 부진한 경영상태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너 일가가 소유한 계열사는 두 자리수 영업이익률을 기록해 대조적이다.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2014년 말 기준 966%로 1000%에 육박한다. 빚이 자기자본의 10배라는 얘기다. 대한항공은 계속되는 적자로 최근 수년간 주주들에게 배당도 못하고 있다.
반면 대한항공과 거래가 많은 일부계열사는 이익이 쏠쏠하게 나고 있는데다 일부 계열사는 이익의 80~100%까지 배당을 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대한항공의 이익을 계열사로 이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들 회사 중에는 조양호 회장이나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 3 남매가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가 많아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 최근 2개년 적자 8413억원, 부채비율 966%까지 상승
대한항공이 지난 2월에 주주들에게 보고한 2014년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부채는 21조2646억원으로 자기자본 2조2011억원의 966%에 달한다.
차입경영이 횡횡했던 IMF 이전에도 찾아 보기 힘든 부채비율로 이정도면 사실상 정상적인 회사경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재계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빚이 많다 보니 이자부담도 커져 지난해 대한항공은 영업에서 3950억원의 이익을 내고도 4203억원이나되는 이자를 내느라 결국 적자회사가 됐다. 2013년에도 4702억원의 이자를 지급해 적자가 났다.
■ 지속적 원가상승...5000억 넘는 계열사거래 의심
대한항공의 수익구조가 악화된 것은 경기침체로 여행객수가 감소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중국관광객이 급증했는데도 경영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걸 보면 영업환경만으로는 적자를 설명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의 최근 5년 매출을 보면 12조원 내외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매출원가율이 2010년 78.4%에서 매년 증가해 2013년에 90.8% 까지 상승했다는 것이다. 원가율에서의 12%p 차이는 전체손익에서 1조4천억원이나 되기 때문에 경영부실의 주요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의 이런 원가상승은 평균 유가가 2010년 80달러에서 98달러로 상승해 연료유류비가 약 3조5천억원에서 4조4천억원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5천억원이 넘는 계열사와의 내부거래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대한항공의 계열사 내부거래는 연간 5051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내부거래 과정에서 대한항공이 계열사로부터 구매하는 물품, 용역을 비싸게 사줘 원가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한진그룹 일감몰아주기 관리대상은 싸이버로지텍,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 정석기업 그리고 유수홀딩스 등 5개 회사다.
이들 회사는 총수지분율이 30%~100%로 이 회사들의 이익은 결국 총수일가의 이익으로 돌아가는데 이들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30%~80%에 이르렀다. 이익률도 대한항공의 2배에서 10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항공측은 "유스홀딩스와는 내부거래가 없으며 유니컨버스는 이익률이 매우 낮은 편"이라고 해명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거래가 대부분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이뤄져 제품가격 조작을 통한 이익이전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것이다.
특히 조현아, 조원태, 조현민 등 3남매의 지분이 높은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의 경우 매출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이나 되는 회사임에도 감사보고서나 사업보고서가 일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 이번 세무조사에서 두 회사의 영업행태가 밝혀질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해도 너무 해”...병원, 보험까지 일감몰아주기
상속세법이나 공정거래법상의 일감몰아주기 대상이 아니더라도 대한항공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조양호 회장과 3남매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내부거래비중도 높지만 일감몰아주기 관리대상에서 제외된 토파스여행사나 한진칼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칼호텔네트워크, 제동레저, 한진관광, 진에어 등도 주목 대상이다.
상속세법상 일감몰아주기 대상에서는 제외됐지만 거래가격과 거래조건을 비정상적으로 유리하게 적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증여세에서는 제외돼도 비정상적으로 거래를 했다면 부당행위로 간주돼 이익을 얻은 회사는 물론 이익을 준 회사까지 이중으로 세금을 추징당하게 된다.
대한항공의 일감몰아주기는 하다못해 처남의 보험사, 사위의 병원에까지 손길이 뻗쳐 대한항공 내부직원들 조차 혀를 내두르고 있다.
외국계 보험회사에 있는 조양호 회장의 처남이 회사를 옮기면 계열사들도 보험을 일제히 따라 옮긴 것으로 밝혀졌다.
작년 8월 대한항공은 항공보험과 배상책임보험을 그리고 한진해운은 선박보험 등 대형보험을 마쉬코리아에서 에이온으로 옮겼다. 당시 조양호 회장의 처남인 이상현 에이온대표도 마쉬코리아에서 에이온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한항공의 임직원들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남편이 있는 특정병원에서만 건강검진을 받도록 했다. 직원들사이에서는 직원에게 시간과 교통비 부담을 지우며 남편까지 챙기고 있다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측은 "에이원은 보헙중개 수수료가 가장 저렴하고 능력이 뛰어난 회사라 계약한 것이며 이상현씨는 오너가 아니고 급여를 받는 사장일 뿐"이라며 "조현아 전 부사장 남편도 한진그룹이 운영하는 인하국제의료센터에서 월급을 받는 성형외과의로 근무중"이라고 설명했다.
■ 이익 이전...형사고발에 소액주주청구까지 가능
대한항공 계열사의 고배당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대한항공과 거래비중이 높은 토파스여행정보는 지난해 이익의 76.8%를 배당했으며 평택컨테이너터미날은 49.1%를 배당했다. 한진해운신항만은 123.9%를 배당해 이익보다 많은 배당을 했으며 한국공항과 한진은 적자가 났는데도 배당을 했다.
적자 때문에 수년 째 배당을 하지 않은 대한항공과는 완연하게 다른 행보이다. 이들 고배당 계열사의 대부분이 대한항공과 거래가 많아 이 회사들의 배당이익이 결국은 대한항공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조세일보>는 유니컨버스 등 계열사와 대한항공 사이의 거래내역을 살펴보기 위해 감사보고서 등을 찾아 보았으나 경영실적을 공시하지 않아 대한항공측에 거래현황과 경영실적을 요구했다. 그러나 "경영상의 비밀"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거부해왔다.
대한항공이 이들 계열사들에게 높은 가격으로 물품과 용역을 구입해주었거나 보증 등 자금조달을 도왔다면 일감몰아주기 증여세외에도 법인세법의 부당행위계산 부인, 소득세법의 소득처분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배임, 횡령 등 혐의로 형사고발까지 가능하고 상법상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청구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예정된 대한항공의 세무조사에 대해 더욱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