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예술은 영혼의 길목에서 탄생
이탈리아의 북부에 위치한 예술의 도시 피에베 디 솔리고. 이 도시는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배경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 묘지에는 치열했던 전쟁의 희생자들이 묻혀있는데 아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뒤에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아군과 적군 구분 없이 함께 묻혀 있다. 모든 젊은이들이 전쟁의 희생자요 피해자라는 뜻이다. 함께 묻음으로써 평화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와 인간이 저지른 참혹한 전쟁에 대한 반성과 근원적인 사랑을 승화시키고 있다.
2009년 6월 피에베 디 솔리고 시장의 초청으로 창작오페라 ‘카르마’를 이태리 성악가가 우리말로 노래를 부르는 초연을 했다.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공연을 한 것이다.
이탈리아에 간 것은 창작오페라의 초연이 목적이었는데, 다녀와 생각해보니 전쟁이 끝나고 피아의 구분이 사라진 예술의 도시 피에베 디 솔리고의 묘지에서 이름 모를 영혼을 마주하게 되는 공간을 넘는 영혼의 인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사를 보면 전쟁 뒤에는 언제나 휴머니즘이 있었다. 생사의 순간이 지나가면 그것을 초월한 또 하나의 예술이 탄생했다. 피에베 디 솔리고가 치열했던 전쟁의 한가운데서 죽음을 초월한 예술의 꽃을 피웠듯이, 우리 땅에도 1950년 6.25 전쟁 중 생사를 오가면서도 아군과 적군이 숲속 가설무대에 모여 이데올로기를 잠시 내려놓고 함께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런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면 과연 믿을 사람이 있을까.
전라북도 정읍에서 전라남도 장성으로 넘어가는 갈재라는 고개. 이 고개는 어찌나 험한지 바람도 쉬어 가고 구름도 쉬어 간다고 할 정도다. 장성 갈재의 풍경은 매우 뛰어나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는 ‘산수 좋기로는 첫째가 장성이요, 둘째가 장흥’이라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한다.
6.25 전쟁이 한창일 때 순회공연에 나섰던 백조 가극단이 장성 갈재를 넘어가다 빨치산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빨치산들은 백조 가극단에게 노래를 불러 보라 강요하지만 가극단 단장은 ‘무대 없이는 노래할 수 없다’고 거부한다. 이로 인해 가극단 배우들의 목숨이 위험해지려던 순간, 당시 전투경찰대 18연대 대대장 차일혁 총경이 백조 가극단을 구출하고 빨치산들을 포로로 생포한다. 그리고 가극단장에게 부탁한다, ‘부대원들을 위해 공연을 해 달라’고.
단장은 ‘정식으로 무대를 만들어 주면 하겠다’고 응낙을 한다. 부대 안에서 백조 가극단의 공연이 있던 날, 차 총경은 명령을 내렸다. 감금한 빨치산들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포박을 풀어주라고.
전쟁 중에는 아군, 적군이 있지만 공연을 보는 데 이데올로기는 필요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탈리아와 한국. 시간과 공간이 다르지만 예술을 통해 피아의 구분이 사라지고 잠시나마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혼을 지닌 사람이기에 이승과 저승을 잇는 길목에서도 예술행위를 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육체를 넘어서는 그 무엇의 작용을 예술로 승화시켜 눈앞에 드러내는 과정에서 혼이 담긴 문화는 기원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