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3일 지난해 진행했던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사업 내부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그간 국회에서 야당이 MB정부의 자원개발 사업이 ‘국가 대재앙’ 수준이라고 주장해온 근거들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확인했다.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MB정부 국부유출 자원외교 진상조사위원회’는 MB정부에서 해외자원 개발에 이미 투자된 금액은 41조원이고 향후 2018년까지 31조원이 더 투입, 총 71조원의 돈이 투자됐거나 투자될 예정이지만 ‘원금 회수’는커녕 수십조의 ‘국민 혈세(血稅)’와 ‘국부(國富)’가 허공으로 사라질 판이라고 주장했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야당의 주장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시켰다. 감사원은 대상을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광물자원공사 등 에너지 3사가 2003년 3월 이후 지난해까지 해외자원개발사업(116개)에 31.4조 원을 투자하였고, 이중 27조원이 2008년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졌으며 앞으로 34.3조 원을 추가 투자해 총 65조원 이상의 돈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투자금 회수에 대해서도 지금 현재 손실이 확정된 것만 캐나다 허베스트 등 3조4천억원에 이르며 나머지 투자자금 또한 회수가 불투명하다고 판정했다. 가히 국가적 ‘대참사’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감사원이 공개한 감사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국가재정 수십조원이 투입되지 않으면 ‘수습’이 불가능해 보일 지경이다. 감사원이 116개 사업 중 24개 사업을 분석한 결과 도대체 ‘답’을 찾기 어렵다. 투자의 기본상식이 무너져도 철저히 무너진 ‘묻지마 투자’였다. ‘고가 매수’는 기본이고 이슬람국가(IS)의 점령지역 가스전 투자 등 ‘위험한 투자’도 마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손실로 손을 털고 나가려는 외국회사 지분도 마구 사들였다.
에너지 3사의 이러한 투자행태를 보면 납득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다. 뭔가 믿는 구석이 없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행위를 했을 리 없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에너지 공기업 3사는 부도위기에 몰려 있고 국가가 이들을 구제하려 하면 ‘국가신용등급’에까지 영향을 미칠 판이다. 나아가 손실의 규모 또한 국제유가와 국제자원가격의 하락으로 갈수록 더 커지면서 수십조원의 순손실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국회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특위는 헛바퀴만 돌면서 ‘책임문제’ 규명에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비리’의 문제는 따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지만 왜 이 같은 ‘대참사’가 벌어졌는지에 대한 정책상의 잘못도 밝혀내지 못 한 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으로 이끌고 있다.
감사원에서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2008년 이후 진행된 에너지 3사는 국제 자원시장에서 ‘자발적 호갱행위’를 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호갱행위’의 배경은 정권 차원의 정책적 의사결정의 결과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정부여당만이 이를 가리려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대참사’ 정책적 배경은 이명박의 ‘국제유가 200달러’ 가이드라인
수십조원의 국부가 허공으로 날아간 상황이 발생한 근본배경을 캐기 위해선 당시 자원외교를 주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5인방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해 보인다. 에너지 3사가 호갱 노릇을 하도록 만든 ‘업무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명박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를 전 정부인 노무현 정부와 엮으려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자신의 잘못을 가리는 것에 불과하다.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에너지 공기업 3사가 2003년부터 31조 4천억원을 투자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의 투자금액은 3조3천억원에 불과했다. 정부나 새누리당이 자원외교 문제에 노무현-이명박 정부 공동책임론으로 물타기 해선 안 되는 상황이다.
특히 국회 국조특위 권성동 간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출석은 ‘죽어도 안 된다’고 방어막을 치는 것도 문제다. 자원외교에 대한 ‘잘못된 투자 가이드라인’은 다름 아닌 이 전 대통령에서 나왔다. 이 전 대통령이 ‘유가 200달러’의 가이드라인이 정책결정과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5월 국제유가 상승 및 광물자원 가격 상승국면에서 ‘국제유가 200불’ 발언을 확신에 차 예언했다. 그는 2008년 5월 6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세계의 자원, 식량 등 모든 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예측불허”라며 “석유값 200달러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2년 전에 ‘석유값 100달러를 준비하자’고 하자 많은 분들이 ‘너무 앞질러 간다’고 했다”며 “제가 (지금) 200불 준비하자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설마’ 이렇게 말하시겠지만 지금 완벽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유가 200불 시대’를 예언했다.
같은 달 23일 전국 시장군수 구청장 오찬 간담회에서도 “기름값이 200불 됐을 때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되고 일상생활이 어떻게 될지 마음의 대비가 필요한 시기”라며 “연말 되면 150불될지, 200불될지 모르지만 200불 됐을 때 우리 경제 어떻게 되고 일상생활 어떻게 될까, 그 준비는 정부 정책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거기에 마음의 대비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발언은 6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더 이어졌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140불을 오르락내리락하던 시점에 ‘200불’을 언급하면서 해외자원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한 부분이다. 바로 이 시점에 이라크 등 중동 부실 유전이 집중 매집됐다. 이 전 대통령의 ‘유가 200불’ 기준으로 에너지 3사 등도 투자타당성 검토시 ‘리스크’ 회피를 위한 프로세스를 ‘해제’하도록 했을 개연성이 크며 이것이 지금의 ‘대참사’를 초래한 정책적 배경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3사 사실상 부도, 국가가 나서면 ‘국가신용등급’에 영향 미쳐
이러한 MB 가이드라인으로 에너지 3사는 ‘광란의 질주’를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가 ‘묻지마 투자’였고 지금의 ‘사실상 부도상황’이다. 올해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 도래하는 만기도래 단기차입금을 보면 석유공사는 매년 1조~1조9천억원 씩 총 7조원을 돌려막아야 한다. 가스공사는 매년 2조4천억원에서 2조9천원이 도래해 총 14조원에 가까워 석유공사보다 더 심각하다. 광물공사는 2조5천억원 정도이나 자기자산과 대비하면 과다하다.
문제는 지난해 기준으로 이들 에너지 3사는 적자가 심각한 상황에다 재무적으로도 위험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석유공사는 18조5천억원(부채비율 221%), 가스공사는 37조원(부채비율389%), 광물공사는 부채 4조원(부채비율 219%)이다. 그러나 에너지 3사는 올해부터 계약에 따라 34조원을 더 투자해야 하고 여기에 23조원의 만기도래 부채까지 갚아야 한다. 현금 흐름상 5년 동안 57조원의 자금이 추가로 마련해야 하나 자체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회사채를 발행도 어렵다. 최근 5년간 독자신용등급은 석유공사 Ba2(5단계 하락, 무디스), 가스공사 BB+(3단계 하락, S&P), 광물자원공사 B3(11단계 하락, 무디스) 등 3개 기관 모두 ‘투자부적격’이다. 다만 지금은 종합신용등급(정부재정능력 반영)이 반영돼 국가등급과 동일하게 ‘투자적격’(무디스 Aa3, S&P A+)으로 분류돼 있다. 즉 국가가 에너지 3사에 재정보증을 해야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들의 회사채를 보증할 경우 이는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에너지 3사의 부채문제는 우리나라 경제 전체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를 방치하면 에너지 3사는 ‘부도’다. 공기업이 부도날 경우 국가재정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유가 85~100달러 돼야 향후 재무적 안정 도모 가능, 현실은 정반대 50달러 수준
이보다 더 심각한 이러한 재정적 위기를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감사원은 “석유공사가 자신의 재무적 개선을 위해선 국제유가 수준이 배럴당 85~100달러 수준으로 잡고 있다”면서 이조차도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감사원은 “(3개 공기업은) 해외사업 투자비를 장기적으로 회수가능하다고 주장하나 초기 고가 구매, 당초에 기대한 수익 감소 등으로 회수 불투명하다”며 기대매장량이나 수익률을 부풀리는 등 경제성을 과다 평가하고 있다고 자산가치 재평가시 잠재 부실로 당초 계획보다 낮은 수익이 예상된다고 에너지 3사의 자기 방어 주장에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감사원은 석유공사는 지난해 75달러 수준의 유가에도 재무적으로 버티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지금의 50달러 수준은 석유공사에게는 ‘재앙’이다. 게다가 이란 핵협상 타결과 미국 셰일가스 공급량 증대 등으로 유가는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가스공사나 광물자원공사 또한 비슷한 처지이다.
석유공사 등의 주장을 보면 이들이 배럴당 100달러 유가기준으로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한 것을 알 수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내내 이러한 기준을 적용해 국제 자원시장에서 ‘묻지마 투자’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은 이들이 스스로 마련했다기보다는 권력층이 제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국제 자원시장의 ‘호갱(호구 고객)’으로서 국제 투자사들의 먹잇감이 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