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죽어도 배우는 배우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었다. 최근 많은 사건 사고가 있어 신명날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한 마음을 풀 신명난 장소를 찾게 된다. 그런데 그런 곳은 사람보다 영혼이 먼저 찾아간다.
그중에서 연예계는 유난히 영혼이 자주 가는 곳이다. 영혼은 신명나는 곳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예전 구명시식 자료 화면을 보다가 디지털 캠코더에 여자 영가가 찍힌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병풍 뒤쪽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살풀이춤을 따라 추고 있었던 것이다. 염으로 봤던 그녀의 전생은 끼가 많았던 가극단 출신 여배우. 자신의 끼가 다 표출되지 못한 채 폐결핵으로 숨진 여성이었다. 하얀 얼굴을 가진 미모의 영가는 춤을 추다 디지털 캠코더에 자신의 모습을 남겼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연예계에서 영혼이 출현하면‘대박’이 난다는 속설 아닌 속설이 있다. 10여 년 전 영화를 찍던 중 배우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영화사 측의 적극적인 수습으로 유족들과 합의가 이루어졌고 영화 촬영은 다시 진행됐다. 개봉 후 영화는 큰 성공을 거뒀다. 배우들의 대변신과 조연배우들의 열연에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촬영 도중 배우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영화를 보는 순간 스크린에 살짝 살짝 나타나는 영가를 목격하고는 놀랐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 확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영화 촬영 때 불의의 사고로 죽은 배우가 있었느냐”고 함께 갔던 분에게 물었다. 그는 “알고 계셨군요”라며 영가의 존재를 확인시켜 줬다. 그 영가도 영화가 잘 되길 진심을 원했던 것 같다.
한때 스크린의 여왕이었던 모 여배우의 딸이 찾아왔다. 워낙 영화를 좋아해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 팬이었다”고 하자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요청으로 구명시식이 시작되고 나타난 어머니 영가는 “영단에 적혀 있는 이름은 가명이다. 본명은 따로 있다”고 고백했다. 본명으로 서둘러 고치려는데 그녀와 함께 온 왕년의 톱스타 영가들까지 덩달아 자기 이름도 고쳐 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닌가.
좋아하던 톱스타들이 벌써 영가가 됐다는 사실에 내 마음은 착잡했지만 그들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영계에서도 영화를 보고 배우들의 연기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 중 어떤 영가는 “요즘 배우들은 왜 그렇게 연기를 못하느냐”면서 대놓고 꼬집었고 “여배우는 함부로 벗어서는 안 된다”며 지나친 벗는 연기를 자제할 것을 충고 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이 싫다”고 했다. 영가가 된 뒤에도 ‘배우정신’을 간직했던 그들이기에 내생에는 어떤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날지 무척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