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이 사상 최악 수준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15세에서 29세 까지의 지난2월말 현재 청년실업률은 11.1%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 실업률 통계기준을 변경한 1999년 7월의 11.5% 이후 최고치다.
통계상의 공식 실업률은 11.1%지만 체감실업률은 22.9%〜37.5%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공식 실업률은 일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 중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지만 체감실업률은 아르바이트나 프리랜서 등 다양한 불완전 취업상태에서 제대로 된 취업을 준비하는 경우와 입사준비생, 구직활동을 중단한 경우까지 포함한다.
‘청년실신’(실업자+신용불량자)에다 ‘인구론’(인문대 졸업생 90%가 논다), 연애·결혼·출산·집장만·꿈·희망·대인관계를 포기한 ‘칠포’세대 등의 신조어들이 범람하면서 청년실업의 고착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청년실업의 악화는 경제문제를 넘어 사회·정치문제로 비화하기 마련이다. 낮은 출산율을 더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 생산가능 인구를 줄여 경제의 성장동력을 앗아간다. 이들을 사회체제에 대한 반항세력으로 키워 정치 불안정성을 고조시킬 위험 또한 다분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청년 일자리 만들기 전쟁’ 운운하며 모든 정책을 청년고용 증가와 결부시키며 부산을 떠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책보다는 공허한 말잔치에 머물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청년관련 정책 32개가 쏟아졌지만 공공부문 청년 일자리 증가, 해외 취업 지원 및 장려, 중소기업 취업 장려, 청년인턴제도 등 이름만 바꾼 정책들만 반복될 뿐 청년고용은 늘어나지 않았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에서의 생존 등을 내세우며 청년 고용을 외면해 왔고 정부는 당장의 경제활성화에 매달려 이를 묵인·방치했다. 그 결과 인건비를 줄이고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비정규직 채용 등 간접고용은 크게 늘어났다. 취업률은 높아졌지만 일자리의 질(質)은 나빠지면서 고용양극화를 심화시켜온 것이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려면 우선 경기가 살아나야한다. 하지만 경제상황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내수가 살아나는 속도는 여전 더디고 그나마 버텨오던 수출마저 3년 만에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30대 대기업그룹의 경우 올해 신규 채용계획을 지난해 보다 6.3% 줄이는 등 취업문은 날로 좁아지고 있다.
불경기 외에 청년취업을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가 지목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청년 일자리가 해결됩니다’라는 광고를 얼마 전 주요 일간지에 일제히 실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인력양성 체계, 비정규직·정규직의 이중구조가 이대로라면 청년실업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고용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 절실하다. 정규직 과보호가 해소되고 그 과정에서 청년의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지만 노동시장 구조개혁만이 청년실업의 해결책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좀은 속이 들여다보인다. 정부가 청년고용 문제해결이란 명분을 내세워 노동계의 양보를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부터 석 달 넘게 끌어온 노사정(勞使政) 협상은 좌초된 상태다. 3월말로 약속했던 시한을 넘기더니 지난주에 노사정 대타협은 결렬되고 말았다. 상위 10%이내 고소득 근로자들이 자율적으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경영계와 정부가 지원해 청년고용을 늘리는 데 노사정이 공감을 이루었다지만 임금인상 자제를 노동계가 거부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청년의 일자리 증가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대립구도로 논의가 전개되어서는 곤란하다. 부모 세대의 일자리를 뺏거나 노동시장 하향평준화에 따른 저임금 일자리 양산(量産)이 그 대책일수는 없다.
“청년들이 텅 빌 정도로 중동에 진출했으면 좋겠다”는 박근혜대통령의 바램 역시 대책일 수가 없다. 중동지역은 두바이 등 걸프만 연안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IT 금융 사무 등 한국 대졸자들이 접근가능 분야가 제한된 곳이다.
중동 건설현장에는 소수의 한국인 관리·기술 인력만 필요할 뿐 노동자의 대부분은 월 400달러 정도를 받는 남아시아 근로자들이다. 신세대 한국 청년들이 70, 80년대식 현지의 기후 와 문화, 작업환경에 적응하고 인내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최근 임금피크제를 활용해 청년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정부가 재정지원하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통해 아낀 돈을 새로 청년을 고용하는 데 쓰면 전액 또는 일정 비율을 정부가 매칭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대기업은 2016년부터 중소기업들은 2017년부터 정년이 60세로 늘어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기업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고 세대간 갈등을 줄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임금피크제가 청년취업의 한 돌파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재정지원을 통한 청년고용은 스스로 한계가 있다.
극심한 청년실업 속에서도 중소기업은 만성 구인난이다. 눈높이 때문이 아니라 ‘언제 망할지 몰라 불안해 지원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젊은이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근본적인 대책은 중소기업·산업단지가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일터가 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대기업의 60% 수준인 중소기업 임금 격차를 해소하고 일자리 환경도 여가문화 공간 등 젊은이들의 문화적 욕구에 호응할 수 있도록 개선시켜 나가야한다.
서비스산업 활성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과 지식서비스산업을 키웠지만 제조업의 쇠퇴로 엄청난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부터 중소·중견기업의 수출증가율이 대기업을 앞서기 시작했지만 독일의 히든 챔피언에 필적할 만한 곳은 10여 개에 불과하다.
산업경쟁력의 기반이자 일자리 창출의 원천인 산업단지를 지식과 혁신이 창출되는 혁신지향형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청년들이 찾는 산업단지, 사람과 기술 문화가 어우러지는 활력 넘치는 일터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는 정부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정책 2년 동안 만들어진 신생 창업기업은 수천 개를 헤아린다. 여기저기 단지조성과 창업기업 개수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이들이 일자리 증대와 부가가치 창출로 연결되도록 정책역량을 집중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창의와 혁신이 선순환되는 창업 생태계 조성에 아낌없는 투자가 이루어져야한다. 임시방편적 청년취업 증대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청년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