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 "기업의 모든 문제 발견은 한계…책임 과도해"
금융당국 "부실감사 사례도 있어…감사기준 지켜야"
최근 투자자들이 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회계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투자자들은 "회계법인들이 기업에 대한 회계감사를 부실하게 진행해 부정확한 감사보고서를 참고해 투자했다가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회계법인들은 "검찰처럼 수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이 제공하는 자료에 전적으로 의존해 외부감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찾아내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기업이 고의로 치밀하게 벌인 분식회계를 적발하지 못한 것을 부실감사로 몰고 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한상 고려대학교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회계법인 법적책임에 대한 통계분석'에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회계법인이 피소된 건은 총 44건(중복 및 동일사안 제외)에 이르렀다.
2013년에는 투자자들이 회계법인의 부실감사를 이유로 청구한 손해배상소송 가액이 655억원에 이르렀다. 이 중 166억원에 대해서는 회계법인의 배상책임이 인정되기도 했다.
피소 회계법인 중 32%가 삼일PwC와 딜로이트 안진, 삼정KPMG, EY한영 등 4대 회계법인에 집중됐다. 더구나 외부감사를 진행하는 법인 중 55%가 배상소송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회계법인의 고위관계자는 "최근 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이 증가하고 있어 걱정"이라며 "회계법인에 대한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소송은 일반적으로 피감기업의 상장폐지나 금융당국의 분식회계 적발, 경영진의 횡령 등 사건이 불거졌을 때 제기된다"며 "아직까지는 소송 위험에 대한 리스크를 회계법인이 관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회계업계 관계자는 "코스닥 상장기업에 대한 회계감사를 두고 소송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만일 감사인이 부적정이나 의견거절을 제시하면 오히려 기존 주주들에게 소송이 제기될 수도 있다"며 "코스닥 기업에 대한 감사를 수임하지 않고 기피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이나 경영진에 대한 처벌이 가벼워 분식회계를 통한 이익이 적발됐을 때 받는 손해보다 커 불합리한 면이 있다"며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과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보다 강화해 욕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식회계를 할 소지가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지정감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지정감사를 실시하면 적절한 감사보수와 함께 충분한 감사시간을 투입할 수 있고 감사의 독립성이 높아져 회계감사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며 "분식회계 여지가 있거나 대주주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기업은 지정감사를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론 회계법인들이 회계감사기준을 충실히 지키지 않아 분식회계를 적발하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회계법인 대상 소송 증가는 개별적 사안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감기업에 대한 감사인들의 지위가 낮아 회계감사기준이 정하는 절차를 충실히 지켜도 적발하지 못한 분식회계가 있을 수 있지만 감사가 소홀해 적발하지 못하는 위험도 많다"며 "법원에서도 회계법인들이 충실하게 감사를 벌였는지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우리나라는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분식회계에 대해 관대하다"며 "기업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자는 의견이 많지만 아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