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보이지 않는 세계의 팬클럽 가수
세계 어느 나라 든 노래는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래에는 그 시대의 보편적인 정서가 담겨있다. 특히 한이 많은 나라일수록 노래를 통해 그 한을 풀고 있다. 격동의 현대사를 겪어온 우리 가요도 다른 나라에는 찾아보기 힘든 온갖 풍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고난의 역사가 우리 문화의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현해탄에 몸을 던져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에는 일제강점기 대중들의 암울했던 한이 배어있다. 해방 후 귀국선을 탔던 동포들의 희망을 담은 ‘감격 시대’, 한국전쟁으로 전 국토가 전란을 겪던 시기에는 ‘전선야곡’, 군사 정권이 들어선 시대에는 ‘아침이슬’이라는 노래가 많은 호응을 얻었다.
노래는 마치 ‘들리는 역사책’처럼 지금의 세태를 반영하기 때문에 대중가수는 시대의 흐름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읽어낼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트로트 가수는 남다른 감각의 소유자일 수밖에 없다.
트로트 가수 A씨는 무대 위에서도 탁월한 감각의 가수이지만 무대 밖에서도 남다른 에피소드가 많다. 그는 수차례의 구명시식을 통해서 영혼의 세계를 인정했다. 그의 인기에는 시대 정서를 읽어내는 그만의 뛰어난 감각과 함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노래가 인간의 마음을 감흥 시키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팬클럽이 형성되기도 한다. 구명시식에 참석하는 가수 K씨는 음반도 없는 무명이지만 혼과 정성을 다한 노래로 영가들에게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조용필 못지않은 인기를.
그는 평소에는 털털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지만 일단 밤무대 영가들 앞에만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가슴을 헤집는 음유시인이 된다. 열성 팬 영가들이 앙코르를 절절하게 연호하면 나는 음악다방 DJ처럼 한 곡 더 부탁한다. 가수들에게 소속사가 있듯이, 아마 그도 영계의 소속사 일원은 아닐는지.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노래와 영가를 감화하는 노래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변함없는 것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듣는 이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다독여 줄 수 있나 하는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한국인은 노래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시대에 따라 사랑받는 노래가 바뀌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변한 것보다는 노래가 그 시대의 문화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격동의 역사 속에 다양한 정서가 녹아든 풍부한 감성과 노래를 사랑하는 문화적 환경이 두루 어우러져 나타나는 것은 큰 축복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마는 가슴을 녹이는 노래만은 계속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