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현대판 순장
얼마 전 경주 황남동 일원에서 귀족 여성의 무덤이 발굴됐다. 귀족 여성의 무덤에서 기이하게도 함께 순장된 것으로 보이는 남성 인골이 발견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남녀 인골의 자세였다. 30대 추정의 무덤 주인 여성 인골은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위를 바라보고 있었고, 순장자인 20대로 추정되는 남성 인골은 여성 인골을 바라본 상태로 엎어져 있었다.
남녀가 위, 아래로 포개진 채 발견된 것이다. 아마도 여성 인골이 들어있던 관이 세월이 흘러 썩어 없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남성 인골과 포개진 상태가 되었으리라 추측은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매우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덤에 대한 고고학자들의 면밀한 조사가 이뤄지면 무덤의 비밀도 밝혀지리라 본다.
한 집단의 지배자가 죽었을 때 관련된 사람들을 함께 묻는 것을 순장이라 한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순장 무덤은 중국의 진시황능일 것이다. 신라시대에도 순장이 있어 1970년대 발굴된 경주의 황남대총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당시 60대였던 남성과 15세가량으로 짐작되는 여성의 유골이 함께 나왔다.
발굴 당시에는 누구의 무덤인지 의견이 분분했으나 그때는 소지왕의 일화에서 그 단서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소지왕이 지방 시찰을 갔을 때 파로라는 사람이 비단에 싼 무언가를 왕에게 바쳤다고 한다.
비단 안에서 미모의 소녀가 나왔고 왕은 파로의 딸이었던 벽화라는 그 소녀를 즉시 돌려주고 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소녀를 끝내 잊을 수 없던 소지왕은 소녀를 다시 찾아가 함께 밤을 보냈고 얼마 후 사망했다.
물론 다른 기록에 따르면 벽화라는 소녀가 후일 아들을 낳았다는 말도 있어, 위의 학설에도 상당수 이견이 있었다. 그 후 탄소를 이용한 질량가속분석기를 통해 황남대총의 주인공이 눌지왕이라는 과학적 증거가 제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증왕이 순장을 금하기까지 다수의 왕들이 순장 풍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만일 우리들이 현대판 순장을 한다면 어떠한 마음에서 무엇을 순장 할 지 궁금하다. 사람들에게 죽을 때 함께 묻을 대상을 물어보면 한동안 뜸을 들인다. 하지만 함께 묻지 않았으면 하는 대상을 물어보면 답이 빨리 나온다. 대부분 손사래를 치며 농담이라도 행여나 지금 사는 배우자는 절대 함께 묻지 말아달라고 웃어넘긴다.
영적인 관점에서 보면 마음속에서 이미 배우자가 죽은 사람이 많다. 어느 쪽 잘못에서 비롯되었건 간에 우리 사회에는 정신적인 미망인이 너무 많은 것이다. 순장하기 전에 미망인이 되었으니, 현대판 순장은 원래 모습과는 정반대가 되어버린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