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회 공익재단은 그 시작을 정구정 현 세무사회장의 취임과 함께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2011년 제27대 한국세무사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세무사업계 이미지 제고를 명분으로 한 '공익사업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60%에 육박하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정 회장은 2011년 5월2일 세무사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공익재단 설립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 당시 세무사업계 분위기는 공익재단 설립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전임 회장(조용근 현 천안함재단이사장)이 4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심어놓은 '나눔 DNA'가 세무사업계 이미지 제고에 유무형으로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이는 확실한 동력이었다.
2012년 2월17일 공익재단 설립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전 회원을 대상으로 한 공익재단 설립 기금 모금이 시작된 것이다.
'이상'은 '현실'을 넘어서지 못했다.
기금 모금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공익재단 설립의 취지는 이상적이었지만, 그 기반인 '돈'은 현실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목표한 설립 기금은 무려 120억원. 돈 문제에 대한 세무사회원들의 생각은 정 회장이 만든 공익재단 설립의 명분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9572명의 세무사회원(2012년 기준) 중 절반이 채 되지 않은 4659명(47.73%)이 약 8억8000만원을 모금했고 세무사회에서 2억원을 만들어 총 11억원의 설립기금이 마련됐다. 애초 정회장이 목표한 기금 규모의 10%도 채 되지 않은 수준이었던 것이다.
세무사회는 2013년 5월7일 정부에 재단법인 허가신청을 접수했고 그해 12월12일 세무사회 공익재단 출범식을 가졌다.
'돈, 돈, 돈' 돈타령으로 점철되다
공익재단 설립은 돈 문제 때문에 곳곳에서 '파열음'이 생겼다. 세무사회는 무려 8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내 전 회원들에게 공익재단 출연금 납부를 독려했다.
공익재단 기금 모금 과정이 여의치 않자 세무사회는 2012년 7월 공익회계규정을 만들어 전 회원들이 매년 4만원씩 공익회비를 납부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부족했는지(2013년 기준 공익회비 3억6294만원) 세무사회는 세무사회원 1인당 공익재단 후원회원 20명을 모집하라는 기상천외한 발상까지 동원했다.
1개 수임업체 당 월 5000원의 후원금을 받아내 기어코 목표했던 120억원 규모의 공익재단으로 키우겠다는 심산이었다.
회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고삐 풀린 세무사회는 후원회원 2명 이상을 모집하지 않는 본회 및 지방회, 지역세무사회 등 모든 회직에서 배제하는 강제규정까지 만들었다.
급기야 지난해 초에는 개별회원의 수입금액에 따라 3억원 이상 회원은 50만원, 2억원 이상~3억원 미만은 30만원, 2억원 미만 회원은 20만원의 (특별)기부금 모집안까지 만들어 시행했다.
'지로용지'에 기부금 액수를 찍어 보내는 기발함까지 동원됐지만 '개인정보보호법' 위배 논란 등 6개월 동안 수많은 잡음 속에 진행된 (특별)기부금 모집은 전국 1만186명(2013년 수입금액 기준) 세무사회원 중 24.4%에 불과한 2492명으로부터 8억3368만원의 성금을 모금하는 초라한 성적표만 남긴 채 종료됐다.
2013년 폐지위기에 몰렸던 전자신고세액공제 유지 등 굵직한 현안들이 해소된 것을 '사회공헌 활동'과 연결지어 전자신고세액공제액 50%를 공익재단 기금으로 기부해야 한다는 이해하기 힘든 여론까지 만들어 내는 등 계속된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이렇게 끝이 났다.
지난해 12월 '한국세무사회 공익재단 제2회 생활비 및 장학금 전달식'은 서울 서초동 세무사회관에서 스포트라이트 없이 조용히 진행됐다. 세무사회원들의 뇌리 속에서 차츰 잊혀지기 시작한 셈이다.
정구정의 1억500만원, 누구의 돈인가
지난 2012년 8월1일자 발행된 세무사신문에는 100만원 이상 공익재단 출연금 납입자 명단이 게재됐다. 명단의 가장 위에는 정구정 회장의 이름이 박혔고, 그 옆 그가 출연한 돈의 액수는 1억500만원으로 찍혀 있었다.
이것이 논란의 소지가 될 줄은 정 회장 스스로도 몰랐을 수 있다.
1억500만원의 돈 중 정 회장의 사비는 500만원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 회장 스스로도 애매모호한 해명을 내놓긴 했지만, 1억500만원 중 1억원은 자신의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 상태다.
이 1억원은 대체 무슨 돈일까.
세무사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돈은 지난 2003년 정 회장이 제23대 세무사회장으로 재임할 당시 '변호사와 회계사가 세무사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對정관계 로비자금 명목으로 일부 회원들이 모금해 준 돈으로 알려져 있다.
이 돈 때문에 정 회장은 일부 회원으로부터 뇌물공여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고발까지 당하는 등 곡절을 겪기도 했다.
7년 뒤인 2010년 이 돈은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그해 조용근 전 세무사회장에게 장학사업에 써달라며 본인 이름으로 세무사회에 기부를 한 것이다. 당시 세무사회장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던 정 회장이 마치 순수한 자신의 돈을 기부금으로 내놓은 것 처럼 '시늉'을 한 셈이다.
그리고 이 돈은 세무사회에 머물러있다가 정구정 회장이 취임 후 공익재단 출연금으로 둔갑해 정구정 회장 개인 이름으로 기탁됐다고 한다. 이 문제는 당시 세무사회 상임이사회 안건으로 올라와 팽팽한 찬반논란이 벌어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상임이사회에 참석했던 전직 임원은 정 회장의 출연금 1억500만원 중 1억원은 개인의 돈이 아닌 조용근 회장에게 장학재단 기부금으로 기탁했던 돈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정 회장이 공익재단에 개인명의로 내놓은 출연금 1억500만원 중 1억원은 정 회장이 지난 2010년에 조용근 세무사회장에게 장학재단 설립을 위해 내놓은 돈"이라며 "출자할 때 개인의 이름보다는 세무사회의 이름으로 하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결국 정 회장 개인 이름으로 출연됐다"고 밝혔다.
이 문제는 일부 회원들이 세무사회의 자산을 정 회장 개인으로 돌린 것이기 때문에 횡령 또는 배임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앞으로 법적인 문제도 발생할 개연성을 남겨놓고 있다.
'진짜 문제'는 따로있다
공익재단을 하겠다며 회원들에게 반강제적인 기부를 독촉하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공익재단에 흘러들어간 돈이 세무사회의 간섭을 받지 않는 '눈먼 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세무사회 정기총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세무사회가 공익재단에 기부한 금액은 5억원, 2014년에는 4억원이 기부됐다.
공익재단이 세무사회 산하이며 세무사회에서 건너간 돈이기 때문에 세무사회가 이 돈과 공익재단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할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공익재단의 법적 설립근거는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따르는데 이 법에 따르면 공익재단 이사회 구성시 특수관계(세무사회)가 있는 자는 이사 현원의 1/5를 초과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또한 재단이사장의 임기는 회장 임기(2년)보다 긴 4년, 다시 말해 올해 6월 차기 세무사회장과 새로운 임원들이 선출된다 해도 공익재단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현재는 현 회장인 정구정 회장이 공익재단 이사장직까지 겸하고 있어 본회에서 공익재단을 통제할 수 있지만 차기 회장 및 집행부는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공익재단의 출연금과 재정, 운영비용은 십원 짜리 한 장까지 세무사회원들의 돈으로 충당되지만 정작 세무사회의 통제는 받지 않는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세무사회원들은 의무규정에 따라 매년 4만원씩 총 4억원 가량의 돈을 내야하지만 돈만 내고 제대로 입김 한 번 불어넣을 수도 없는 '무법지대'가 된 셈이다.
더구나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호선에 의해 선출하고 연임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세무사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공익재단 이사회의 대부분이 정 회장의 측근 인사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정 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종신 이사장'도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