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녹두장군 전봉준이라고 주장하는 교수
지나간 역사를 생각하면 가끔 ‘만약에’라는 가정을 두며 물을 때가 있다. 만약 그때 슬기롭게 대처했다면 지금 보다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물어보는 것은 자신의 전생이다.
전생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의 진실과 쟁점들을 속 시원히 밝히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 그런 요청을 받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거절한다. 영혼의 세계에 진실은 없으며 오직 인과만이 있을 뿐이다.
“저는 전생에 전봉준이었습니다.” 10여년 전 모 대학교수가 찾아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는 신문기자로 1980년대 당시 광주민주화 현장에 있다가 2년여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파란만장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찾아와 대뜸 전생에 자기가 전봉준이라고 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는 전봉준처럼 단신이었으며 까무잡잡한 얼굴에 무언가 고집으로 꽉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동학에 대해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를 해왔으며 이상하게도 전봉준이 이끈 마지막 전투인 우금치 전투에서 관군과 어떻게 싸웠으며 또 어떻게 졌는지에 대해서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전생이라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제가 전생에 전봉준이 맞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그의 일목요연한 논리에 감탄하며 구명시식에 그를 초대했다.
식이 진행되고 있는데 한쪽 끝에 앉아있던 그가 열심히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었다. 어둠 속에 빛이라곤 흐릿한 촛불뿐인데 구석에 앉아 있던 그가 도대체 무엇을 볼 수 있었단 말인가.
그가 본 것은 놀랍게도 자신의‘전생’이었다. 그는 나를 통해서 전생을 알아낸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구명시식에 참석하여 무의식적 상태로의 진입에 성공하였고 그 즉시 전생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시 그는 타고난‘기자’였나 보다. 무의식적 상태인 구명시식 중에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전생을 취재하다니….
식이 끝나자 그는 내게 다가와 “전생은 누가 이야기해 주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확인 해야겠군요”라고 말하며 “왜 오랫동안 목 디스크를 앓고 있는지 알겠습니다. 전생에 교수형을 당했으니 현생이라고 목이 온전하겠습니까?”하며 털털하게 웃어 보였다.
새벽녘 그는 자신이 어떤 운명을 갖고 태어났음을 이제야 알았다며 정결한 마음으로 글 쓰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싶다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