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자 "위탁 사정인 결국은 보험사 편"
최근 보험사가 손해사정사의 판단을 근거로 고객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급증해 소비자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손해사정사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L씨는 남편인 J씨를 피보험자로 메리츠화재의 (무)New라이프케어보험에 가입했다. J씨는 보험가입후 병원으로부터 90%의 장해진단을 받았고, L씨는 질병사망보험금 1억원을 보험사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질병사망보장특별약관 장해분류표에 따르면 지급률이 80% 이상일 경우 보험사는 질병사망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난 2월 L씨는 메리츠화재로부터 보험금 수령은 커녕 소송을 당했다.
L씨는 S병원을 통해 지급률이 90%로 판정된 장해진단서를 메리츠화재에 제출했다. 하지만 메리츠화재는 P손해사정이 사정한 결과를 토대로 지급률을 65%로 판정해 약관에서 정한 보험금의 지급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어 P손해사정은 가입자와 보험사의 견해차가 크다며 민사조정을 신청했다.
L씨는 P손해사정이 보험사의 위탁을 받은 사정업체여서 믿을 수 없다며 반발했다. 최근들어 이같은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손해사정사는 보험사고의 손해액과 보험금을 사정·보상하는 업무를 하는데 고용과 계약형태에 따라 고용 손해사정사와 위탁 손해사정사, 독립 손해사정사 등으로 나뉜다.
여기서 보험계약자는 독립사정사를 선호하고 보험사는 고용사정사와 위탁사정사를 미더워할 수밖에 없는 게 문제다.
고용 손해사정사의 경우 보험사 직원이어서 보험사의 이익에 반하는 판정을 내리기 어려운 처지다. 위탁 손해사정사는 수수료 지급과 재계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보험사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로 인해 손해사정사들은 일방적으로 보험사 편에 서 손해사정 업무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는 결국 소송으로 이어져 보험 가입자에 피해를 주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보험사가 고객에게 소송을 제기한 건수는 2032건이다. 2012년 495건에서 2013년 550건, 지난해에는 987건으로 2년 사이에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보험국장은 "손해사정사를 동원해 소송을 거는 행위는 소비자의 보험금을 의도적으로 편취하는 범죄 행위"라며 "손해사정 관련 법규를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손해사정사회 관계자는 "위탁 손해사정사는 보험사에 기여를 해야 일감을 의뢰를 받을 수 있으니 보험사 편에서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며 "어느 편에서 봐도 공정해야 하는데 편향되게 업무를 처리하는 사례가 더러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메리츠화재 관계자는 "보험사로선 오히려 고객 민원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일부러 소송을 진행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보험금을 지급하기 애매할 때는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지극히 소수다"고 해명했다.
그는 "고객측 의사의 판단만 옳다고 신뢰하는 접근도 위험한 시각"이라고 덧붙였다.
보험사들은 소비자 편에서 손해사정을 벌이고 있는 독립 손해사정사들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보험사의 손해사정사는 보험업법에서 정한 약관과 손해배상법리법에 의거해 업무를 하고 있는 반면 피보험자와 피해자가 위임한 손해사정사는 업법에서 정한 약관과 손해배상 법리를 초과해 보험금 사정의 범위를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며 독립 손해사정사를 꼬집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고용 손해사정사들의 경우도 편향된 손해사정을 하면 법적으로 제재를 받는다"며 "범위와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의뢰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 사정결과가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해 9월 30일 손해사정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보험 계약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보험업법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