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왕의 남자가 흘리는 눈물
영화든 드라마든 사극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그것은 그만큼 과거를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인지도 모른다. 사극은 주로 왕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조연인 내시는 극에 작은 재미를 주고, 요즘은 개그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시대의 격변기에 역사를 바꾸는 주요 인물로도 등장하는 내시는 역사적 재평가를 받기도 한다.
간혹 궁궐에 가게 되면 우리는 어쩐지 익숙하다는 우스개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이 혹 전생에 왕이 아니었나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왕이었겠는가. 궁이 낯설지 않으면 아마 궁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간혹 내시나 나인일수도. 이런 말을 하면 불쾌해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전생과 현생은 다르면서도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한 눈에 보기에도 수염도 별로 없고 전체적으로 고운 인상인 분이 선원을 찾았다. 명문대를 나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도록 아직 결혼을 못하고 만성적인 병에 시달려 힘든 인생을 살고 있었다.
구명시식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놀랍게도 그는 전생에 내시를 만드는 국가 기관의 집행관이었다. 평범한 남자들을 최고의 권력자 옆에서 수혜를 받도록 만들어주는 권세를 누렸지만 인위적으로 내시를 만드는 과정은 한 사내의 운명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좌우하는 힘든 일이었을 터, 내시들의 한이 집중되는 것 또한 아마도 신체적 결함을 가지게 되던 그 시점이었으리라. 그런 상념을 고스란히 다 받은 현생의 과보는 그를 평범하고 온전한 남성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했다.
자신의 전생을 알게 된 그는 눈물을 흘리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마음어린 사죄의 절을 했다.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절을 하였다. 오래된 마음의 매듭이 풀렸으니 그의 몸도 서서히 나아지리라 믿는다.
그날 그가 흘린 눈물과 전생에 그로 인해 왕의 남자들이 남몰래 흘렸을 눈물이 생각났다. 그렇게 최고 권력자의 측근들은 가장 빛나는 태양 옆에 있기에 쬐는 빛도 강하지만 그만큼 큰 그림자도 각오해야 한다. 현대에 들어서도 어느 분야든 각종 청탁이 가장 몰리는 곳은 바로 최고 보좌관의 수중이 아닌가. 업이 쌓이기 쉬운 자리이니 만큼 자신의 운신 폭과 본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전생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은 자신의 전생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전생을 안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배우가 이전 출연작에 매여 있으면 다음 작품에서 명연기를 펼치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혹시라도 인연이 닿아 자신에 대한 옛 기록을 보게 되면 남에게 물어보지 않더라도 스스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늘은 알아야 하는 만큼만 알려주는 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