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콘강을 건넌 줄리어스 시저는 로마의 패권을 놓고 폼페이우스와 결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 때 시저의 최측근 참모 라비에누스가 돌연 짐을 싸서 폼페이우스 쪽에 붙는다. 폼페이우스 진영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었다고 환호했다.
8년간 계속된 갈리아전쟁 중 시저의 오른팔로 활약해 왔던 라비에누스가 무장 시저의 비범함을 모를 리 없었을 터. 그러니 마지막 결전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질 것인가와 그에 따른 자신의 운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래도 시저의 곁을 떠났다. 정치적 신념 때문에 그렇게 처신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는 피노체 지방의 평민이었고, 폼페이우스는 그 일대를 소유한 귀족. 라비에누스는 조상 대대로 폼페이우스 가문의 클리엔테스(clientes)였던 탓에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작전이 노출될 심각한 상황에서도 시저가 순순히 그를 놓아준 것도 바로 그 때문. 그 후 시저는 단 한번도 그를 배신자로 비난한 적이 없었다.
클리엔테스에 대칭되는 라틴어는 파트로네스이다. 후견인 내지 후원자를 뜻하는 영어 패이트런(patron)의 어원이다. 대개는 귀족 가문의 가부장이 파트로네스가 된다. 그의 일과는 클리엔테스와의 접견으로 시작된다. 파트로네스는 클리엔테스가 하는 사업의 성공을 돕고 자식교육, 혼사와 취직은 물론 송사도 신경 써준다.
클리엔테스들은 파트로네스가 해적에 납치되면 몸값을 내주고, 공직선거시 기꺼이 투표장으로 쫓아간다. 파트로네스를 위해 직접세에 해당하는 군역(軍役)도 바쳐 전장에서 죽기까지 한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클리엔테스를 확보했는가가 파트로네스의 힘을 재는 잣대가 되었음은 당연지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나오는 얘기다.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고객을 칭하는 클라이언트의 어원이 바로 이 클리엔테스이다. 변호사와 고객의 관계는 인간적 신뢰를 기본으로 한다. 고객이 변호사를 못 믿으면 그 속내를 다 말할 수 없기 때문. 클라이언트는 바로 그 점에 착안한 말이다.
커스토머도 클라이언트와 마찬가지로 고객으로 번역된다. 관세는 customs duty다. 프랑스의 루이 15세는 전쟁과 사치로 국고가 텅텅 비자 국토를 몇 개의 권역으로 쪼갠 뒤 각 권역의 징세권을 민간기업에 팔았다. 이들 민간기업은 생필품이 성문을 통과할 때마다 통과세, 지금의 관세를 징수했다. 무역상들이 이 민간기업의 직원들을 하늘 우러러보듯 할 수 밖에 없었을 터.
그랬던 것이 자주 물건을 사주는 사람도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면서 커스토머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커스토머라는 말에 변호사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인간적 신뢰만큼의 신뢰가 깔려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변호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에다 외국로펌까지 진출한 마당에서 변호사 2만명시대가 도래했으니, 경쟁이 치열해짐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그로 인해 법률서비스에의 접근성이 제고되고 그 질이 좋아질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지나친 경쟁이 시장의 혼탁을 불러와 변호사와 고객의 관계가 자칫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커스토머와의 관계로 변질될 수도 있다고 한다면, 필자만의 기우일까. 지방의 어떤 중소로펌이 다중을 상대로 스팸문자를 무차별적으로 날려 호객행위를 한다는 뉴스가 얼마 전 떴다. 우려됐던 상황이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