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세제실 인사의 '전통'이나 다름없는 기수(期數) 문화에 균열이 생겼다.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전문직위제'의 영향으로 행정고시 선배가 서열상 후배 기수 아래 위치하는 '기수 파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단행된 기재부 국장급 전보 인사가 이를 대변해 주고 있는 모습이다.
기재부는 지난 2일 총리실과의 인사교류를 통해 임재현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행정고시 34회)을 복귀시켜 세제실 재산소비세정책관으로 임명했다. 전임 한명진 재산소비세정책관(행시 31회)이 세제실 주무 국장인 조세정책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생긴 빈자리를 메운 것이다.
그러나 세제실에서는 안도와 한숨이 엇갈리고 있는 모양새다.
외곽조직(심판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세제실 출신 국장급 인물이 수혈됐기 때문에 대체로 무난한 인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세제실 내 국장급 직위에 '위 아래' 개념이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통상 재산소비세정책관을 서열 2위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동안 세제실의 인사 관행도 행시 기수에 따른 서열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에 당초 기재부 안팎에서는 재산소비세정책관으로 안택순 현 조세기획관(32회)이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지난해 7월부터 전문직위로 바뀐 세제실 국장급 라인업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2년(보직이동 제한기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인사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후문이다.
안 국장의 경우 지난해 11월 심판원에서 세제실로 복귀하면서, 현 직위를 맡은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잦은 인사이동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전문직위 덕분에(?) 행시 후배에게 서열 2위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다만 전문직위 필수보직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설명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한명진 국장도 지난해 11월 조세기획관에서 재산소비세정책관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전문직위 보직기간을 채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제실 선임 국장인 조세정책관 자리를 꿰찼다.
한 국장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전보가 인정되는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 기재부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전문직위 취지는 공감하지만, 공직 사회의 문화를 감안할 때 '유연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기수 파괴 인사로 유능한 인재들이 엉뚱한 상황에 내몰릴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진적인 제도의 운영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의욕'을 꺾는 부작용은 막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기재부도 모종의 움직임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소비세정책관, 조세기획관 등 2개의 직위에 대해 전문직위 해제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현재 세제실 내 국장급 직위 가운데 일부를 전문직위에서 해제시키려고 인사혁신처와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