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조국에 몸바친 재일교포 학도의용대
영국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대학의 커리큘럼에도 심령학과가 개설될 정도로 영혼에 대한 탐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영혼 그 자체에 관한 논쟁마저도 정립되지 못한 상태이고 비판적인 소리만 분분할 뿐이다. 그런 가운데 매년 6월 호국의 달이면 생각나는 사건 하나가 있다. 10여 년 전 한국심령과학협회 회장이 나를 찾아와 부탁 하나를 하였다.
6·25 전쟁 때 재일교포 출신의 학도의용대가 약 7백명 정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20세를 전후한 청년 학도병들로 미군 부대 군속으로 참전했다. 군번도 없었고 소속부대조차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에 투입된 이후 실종자를 포함하여 과반수인 4백명 정도가 희생되었다. 3백여명의 나머지 생존자도 이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대부분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한국심령과학협회로부터 한스럽게 죽어간 이들 젊은 영가들에 대한 집단 구명시식을 의뢰해 온 것이다. 협회 회장은 그동안 내가 수많은 빨치산 영가들을 천도해 왔고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로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6·25 전쟁에서 억울하게 참사한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의 각별한 부탁의 말도 그렇거니와 나 역시도 그 분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가 컸기 때문에 그 뜻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런데 문제는 안타깝게도 그때의 희생자 명단을 입수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국방부에 공문을 보내 정식 절차를 밟아야 했는데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명단이 없는 채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한 노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노인은 바로 6·25 전쟁 당시 학도의용대로 참전했던 사람 중 하나로서 그때의 일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간밤의 꿈이 너무 이상해서 아무래도 신몽(神夢)이라는 생각에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꿈에 그 당시 사망했던 희생자들이 나타나 자신을 에워싸고는 도와달라는 청을 해오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에게 가보라는 말까지 전해 주었다고 한다.
그 분과의 통화에서 나는 학도의용대 구명시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직 희생자의 명단을 구하지 못했다는 설명을 했다. 그러자 노인은 자기가 그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구명시식이 시작되기 두 시간 전 극적으로 명단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그날의 구명시식에서는 글로 남길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과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만약 한국 심령과학협회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그 영가들은 한을 품은 채 영계를 방황하고 있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 속에서 다하지 못한 청춘의 한을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지만 그들의 영혼이 보다 숭고한 정신으로 승화되어 가기를 비는 마음이 매년 6월이 되면 간절하게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