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조사분야 ‘일가견(一家見)’…야무진 일처리 ‘일품(一品)’
부드러움・온화함의 미학(美學)…동료・후배에게 ‘인기 만점’
지난 2002년 국세청에 설립된 조세박물관은 국민들에게 세금의 역할과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당초 설립 취지에 맞게 제대로 운영, 매년 20만명이 넘는 어린이 등의 관람객이 찾아올 만큼 명소(名所)가 됐다.
지금이야 어린이를 포함한 관람객들에게 역사적 유물의 소개와 다양한 체험학습 공간을 제공하고 또 각종 특별기획전을 여는 등 활성화 됐지만, 초기 조세박물관의 모습은 전국의 전・현직 국세청 직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수집된 유물들을 단순히 모아놓은 곳에 불과했다.
그런 조세박물관이 현재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 것은 공직의 최고 말단인 9급 출신으로 국세청에 들어와 ‘조세박물관의 대부(代父)’로 통하다가, 이달 말 명예롭게 국세청을 떠나는 박기화(사진) 평택세무서장이 혼신의 열정을 담아 과감한 리모델링을 했기에 가능했다.
퇴임을 며칠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도 아침 일찍 세무서에 나와 청사 주변 잔디밭을 깔끔하게 손질할 만큼 평택세무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박 서장은 국세청에서만 오롯이 38년5개월이라는 기나긴 공직생활을 지내며 국세청 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왔다.
■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삶…온화함의 미학(美學)으로 승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봤을 때 박 서장은 제법 유복한 가정에서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것 같지만, 어린 시절 선친에게 유산으로 받은 것은 엄청난 빚과 어린 동생들로 스스로 기억할 만큼 유년시절은 무척 어려웠단다.
참고서는커녕 점심 도시락도 없이도 줄곧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에 다녔지만, 3남2녀의 장남인 가장으로서 집안의 생활고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대학입학을 포기했을 정도.
고졸 직후 건설현장에서의 막노동은 물론 뚝섬에서의 공장일과 길거리에서의 튀김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으며, 초등・중・고등학교에 줄줄이 있는 어린 동생들에겐 “나의 장기(臟器)를 팔아서라도 가르치겠다”며 열심히 뒷바라지 했다.
그러다가 9급 공채시험에 응시해 58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순천세무서로 발령을 받아 국세청과 인연을 맺게 됐고, 그 뒤에도 아직 갚아야 할 빚도 많이 남아있는데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한 동생 등의 학비도 만만치 않게 필요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지속됐다.
그러면서도 그는 선배들이 꺼리는 숙직을 일주일에 2～3차례씩 대신 서줄 만큼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얼굴에는 늘 웃음이 떠나지 않을 만큼 밝았고, 주어진 일을 솔선해서 야무지고 깔끔하게 처리하면서 동료와 선배들의 신뢰를 쌓아갔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의 사람됨과 사정을 알게 된 선배・동료들은 이제 그의 일을 남의 일처럼 보지 않았다.
그 시절 같이 근무했던 이경훈 순천세무서장은 동생의 서울대학교 등록금을 내주는가 하면 동생이 축구를 하다가 턱을 다쳐 어려움을 겪었을 땐 선배들이 나서서 병원비를 보태주었으며, 심지어 그가 군대에 입대했을 때에도 직원들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때의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박 서장은 특히 정이 많은 사람”이라며 “한번은 길가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간질병 환자가 있었는데, 박 서장은 다른 사람처럼 회피하지 않고 그가 진정돼 정신을 차릴 때까지 손을 꼭 잡고 있었다”고 전했다.
또 “박 서장은 실수한 직원들에게 결코 화를 내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으며, 지적도 늘 온화하고 부드럽게 한다”며 “그렇지만 업무방향과 관련해선 제대로 짚고 챙긴다. 그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소유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주변에 누군가 어려워하는 처지를 보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오지랖이 너무 넓다고 질책을 받기도 한다”며 “내가 어려울 때 그랬듯이 지금도 동료나 직원들이 어려운 일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먼저 앞장서서 도우려 한다”고 말했다.
■야무진 일처리 ‘일품(一品)’…법인・조사분야 ‘일가견(一家見)’
그는 타고난 성실성에 더해 꼼꼼하고 야무진 일처리로도 정평이 나 있는 인물. 지금도 그렇지만 일반 직원들에게 세무서 각 부서에서 자신의 기본 업무 외에 추가로 모든 집계작업을 포함해 보고서까지 만들어야 하는 총괄업무(=내무)는 기피대상 1호 업무다.
특히 모든 업무를 총괄해야 하는 내무업무는 전체적인 일을 꿰뚫을 수 있어야 하기에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주로 업무능력이 탁월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특징.
그는 일선세무서에서 일반직원으로 일하는 오랜 기간 동안 그 어느 세무서를 가든 내무업무를 도맡아 했다. 자신의 고유 업무 외의 추가 업무로 일은 힘들었지만 남들이 피하는 일을 그는 스스로 자청해서 해냈고, 그 결과에 관리자들은 매우 만족해했다.
내무업무 뿐만 아니라 주어진 일에 대한 야무지고 깔끔한 일처리 그리고 그에 더해 직원들 사이에서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까지 돋보이다 보니, 어디를 가든 튀는 사람으로서 그가 관리자들의 눈도장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초임시절 목포세무서에서 건설교통부장관을 역임한 안정남 서장, 그리고 순천세무서에서 보건복지부장관까지 지난 김성호서장과 인연을 맺어 보다 큰 꿈을 꾸었고, 박서장이 우수인력으로 수도권으로 올라가 그들과도 오랜 인연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남세무서부터 수도권 생활을 시작한 그는 법인업무를 주로 맡았는데, 개포・서초・성남세무서에서 법인세 분야의 실력가로서의 명망을 높이다, 국세청 본청 법인세과에서 정병춘・김형균· 김영환・임창규 등으로 구성된 ‘국세청 역대 최고의 법인세 드림팀’과 같이 근무하기도 했다.
이어 성수・광진세무서 법인세과에서 일반직원으로는 마지막으로 법인세 분야에 종사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초급관리자인 사무관으로 승진한 이후에도 제주・이천세무서 세원관리2과장으로 법인세업무를 계속하며 법인통으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1급청이 되기 전의 중부지방청 징세조사국에서 3년 넘게 일하면서도 그의 진가는 유감없이 드러났다.
조사국이 한 곳밖에 없었던 당시 그는 중부청에서 대법인은 물론 중소법인・개인조사까지 모두 담당했는데, 그가 속한 청 4조사관실은 조사국 내에서 환상적인 팀워크로 최고 실적을 자랑했다.
광주청 징세법무국장으로 재직할 땐 허재호 前대주그룹 회장과 관련해 ‘일당 5억원의 황금노역’으로 시끄럽기 이전. 그는 치밀한 계획으로 이혼한 부인 집에 숨겨놓은 고가 미술품과 함께 차명으로 숨겨놓은 수백억 상당의 부동산 등을 압류하며 모든 체납세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 조세박물관의 대부(代父)…국세청에 남긴 족적(足跡) 뚜렷
지난 2000년 그는 국세청 총무과 인사계의 포상담당자로서 당시 열린 국세청의 제2개청 1주년 기념식을 ‘국세청만의 잔치가 아닌 국가 전체의 잔치’로 만들면서 일약 중앙무대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우뚝 서게 된다.
그의 노력으로 기념식에서 제2개청 추진에 공이 많은 국세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훈장 3명과 포장 3명 그리고 대통령표창 12명과 총리표창 12개 등 모두 30명의 포상이 가능하도록 한 것.
특히 그 결과가 국세청의 6급 직원에 불과했던 그가 겁도 없이 행정자치부를 혼자 찾아가 국세청 제2개청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 왜 포상이 필요한지를 논리정연하기 피력했기 때문으로 알려지면서, 국세청 사람들은 그의 추진력에 놀라면서도 큰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또다시 행자부와 협의해 “국세청 직원들 숫자가 이렇게 많은데 모범공무원 포상자가 다른 부처와 비교해 너무 적다”고 당위성을 피력, 모범공무원 포상대상자를 무려 36명이나 늘리는 실적을 올렸다.
그가 국세공무원으로만 40년 가까이 근무하며 국세청에 남긴 가장 뚜렷한 족적은 누가 뭐래도 유명무실한 국세청 조세박물관을 6년 만에 과감하게 리모델링, 명품 박물관으로 완벽하게 탈바꿈 시켜 놓은 것.
당시 조세박물관에 대한 중요성 인식은 물론 관심조차 받기 힘들었기 때문에 주어진 예산은 고작해야 1억2000만원 수준. 이 돈으로는 전시환경 개선은커녕 시설공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예산과 인력부족의 한계로는 그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추진력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새로운 전시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한국박물관학회 회장 등 유명 인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으며, 밤잠을 설치는 오랜 노력 끝에 약135평 규모의 면적에 깔끔한 시설공사로 새로운 전시기법에 맞는 전시환경을 구축했다.
그리고는 조세박물관을 미래납세자들의 '배움의 장(場)'으로서의 역할을 보다 강화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나라의 우수한 조세제도와 국세행정 발전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조세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
조세전문박물관 특성을 살려 ▲수결 기획전 ▲술과 세금의 밀접한 관계를 표현한 술과 세금 기획전 ▲땅과 관련한 조선시대 조세제도를 살펴보고 땅의 소중함과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한 ‘땅, 나눔과 소유’ 기획전 등 3차례의 특별기획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것도 그의 공로.
특히 그는 세금징수기관인 국세청은 다른 부처에 비해 정책소통・홍보에 취약한 한계를 극복, 근로장려세제가 처음 실시된 2009년 전략적 통합홍보를 통해 정부업무 특정평가 ‘정책소통・홍보분야 종합평가’에서 국세청을 최상위 그룹인 우수기관 반열에 올려놓으며 그는 대통령표창을 수상한다.
이와 함께 홍보과에 근무하면서 국세청이 전방위적으로 나선 사회봉사활동을 총괄하는가 하면 국세청 처음으로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소통・홍보T/F팀을 운영, 국세청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국민들에게 국세청에 대한 신뢰와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등 ‘소통・홍보의 달인’으로 유명세를 탔다.
■ 다시 태어나도 국세청 근무할 터…가족・후배에 보답하며 살 것
그는 국세청 인사계에 근무할 때부터 많은 국세청 직원들의 인사기록을 외워 ‘걸어 다니는 세무인명록’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사무관 이상은 물론 함께 근무한 많은 직원들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출신지역까지 줄줄이 기억한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박 서장은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보면 일체 권위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며 “심지어 세정협의회 등 어떠한 회의석상에서도 자유로운 토론을 위해 상석(上席)을 고집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 아무자리에나 앉을 정도”라고 말한다.
박 서장은 또 선배와 후배들을 대할 때도 확실한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이 있다. 뒤에 태어난 사람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후배가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쌓으면 선배를 능가할 수 있기 때문에 후배를 존중해야한다”고 했다.
이어 “아프리카 속담에 죽어가는 노인은 불타는 도서관이라는 말이 있다. 경륜과 경험이 많은 노인은 도서관에 비치된 책처럼 배울 것이 많아서, 노인의 죽음은 곧 불타 없어지는 도서관과 같다”며 “경험과 경륜을 충분히 배울 수 있도록 후배는 선배를 공경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박 서장은 특히 사람과의 소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오랜 국세청 생활을 하면서 안과 밖의 소통을 잘 하고자 누구보다 노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직원들과의 안으로의 소통을 위해 그는 현재 160명 정원의 평택세무서 직원의 이름과 나이 출신학교 등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며, 직원들과 지나칠 때는 항상 이름을 부른다. 이는 직원들에 대한 관심으로서 직원들이 즐겁고 편안한 직장생활을 위해 아주 유용하다고 했다.
밖으로의 소통은 납세자와의 소통으로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납세자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납세자를 이해·설득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박서장은 오랜 기간 동안 본인이 직접 조사하거나 과세한 건에 대해 단 한건의 불복도 없었고 세금을 체납한 일도 없었다고 한다.
이같은 인간관계를 기본으로 유지하려는 그는 오래전부터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는 인연의 끝은 놓지 않고 인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그의 주변엔 늘 사람들이 따라다닌다.
인터뷰 중간에도 과거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으며, 특히 교통사정이 좋지 않은 평택세무서는 근무를 꺼리는 대표적인 곳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세무서장에 취임했다는 소식에 그 전에 같이 근무했던 많은 직원들이 평택세무서 근무를 희망하는 현상도 빚어졌다.
퇴임을 앞둔 그는 소회가 남다른 듯 “나와 가족의 인생을 후원한 고마운 직장인 국세청을 앞으로도 가족이라 생각하고, 국세청 출신임을 늘 자랑하며 살 것”이라며, “다시 태어나더라도 국세청에서 국세공무원으로 살고 싶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아내 정미애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만 둘을 두고 있다. 얼마 전 결혼을 한 아들은 대기업에 입사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기 위해 꿈을 키우고 있다.
그는 “4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마감해야 하는 지금에 와서 문득 돌이켜보니 나는 참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임을 알게 됐다”며 “냉정하게 따져봤을 때 직장에 80% 비중을 뒀다면, 가정에는 20% 비중도 주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특히 “아내는 어려운 집으로 시집을 와서 동생 뒷바라지를 비롯해 묵묵히 궂은일을 다하며 내조를 잘 해줬다”며 “아들 둘을 키우면서도 짠돌이처럼 근검절약까지 해서 지금 먹고살 정도는 되도록 살림을 키웠다”며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또 “직장 일에 파묻혀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어느 덧 되돌아보니 아들 둘이 모두 장성해 있더라”며 “무탈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마감하게 된 것도 다 가족의 덕분 아니겠느냐”며 “앞으로는 특히 집사람에게 골프도 가르쳐서 같이 라운딩도 하고, 같이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못해준 것들을 열심히 다 해 줄 생각”이라고 했다.
■박기화 평택세무서장은…
▲57년 ▲전남 광양 ▲순천매산고 ▲일반 공채(9급) ▲순천세무서 총무과 행정계(77년 2월 초임), 목포세무서 부가가치세과(8급 승진), 성남세무서 부가가치세과, 개포세무서 법인세과, 서초세무서 개청준비단, 서초 법인세과(7급 승진), 성남세무서 법인세과, 국세청 본청 법인세과, 성수세무서 법인세과, 중부청 조사국 4조사관실(6급 승진), 광진세무서 법인세과, 국세청 총무과 인사계(사무관 승진), 제주세무서 세원관리2과장, 이천세무서 세원관리2과장, 군산세무서 총무과장, 북인천세무서 납세자보호담당관, 국세청 세정홍보1계장, 중부청 징세법무국 숨긴재산 무한추적TF팀장, 광주청 징세법무국장, 평택세무서장. .banner_box_wrap{display:n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