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겨울, 포항의 맛

포항의 겨울에만 맛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먹거리 찰진 과메기를 필두로 살이 통통히 오르기 시작하는 대게, 죽도시장의 별미 고래고기와 참문어, 바다 바람에 꾸득꾸득 말려 겨우내 두고 먹는 각종 생선들, 오동통 말캉말캉 씹는 맛이 일품인 피데기까지… 짭쪼름한 바다 내음을 듬뿍 머금고 찰진 바람을 이겨낸 포항의 겨울 먹거리는 한 번 빠지면 매년 이 맘때 이 곳을 다시 찾게 하는 마법같은 힘을 지녔다.

포항의 맛은 이 곳에서 시작된다. 죽도시장

1950년대, 아담한 노점상들이 오밀조밀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시장인 죽도시장은 포항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다. 포항 앞바다에서 갓 잡아온 생선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는 시장이다.

고래고기와 상어고기, 개복치 등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진귀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요즘같은 겨울철에는 한참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대게와 돌문어와는 또다른 쫄깃함이 느껴지는 참문어, 알이 올라 지짐으로 먹기 좋은 도루묵, 굵고 싱싱한 왕소라까지… 눈과 입을 만족시킬 온갖 종류의 해산물이 가득하다.

무려 12가지 맛이 난다는 고래고기는 죽도시장의 대표적 별미. 육지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선 고기지만 알고 보면 고래고기는 예부터 순대값보다 약간 비싼 수준일 정도로 저렴한 서민음식이었다고.

죽도시장은 각종 해산물을 싱싱하고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지만 다양한 맛집도 포진되어 있다.

대표적인 음식은 물회. 예로부터 어촌의 삶은 논밭이 없는 농촌보다 더 가난했고, 바닷가 사람들은 끼니 때우는 일도 버거웠다.

그러니 지금의 생선회처럼 생선의 살을 곱게 발라 별미로 먹기보다는 듬성듬성 회를 뜨고 집안에 항상 있는 된장, 고추장 양념에 텃밭의 푸성귀를 더해 찬물을 부어 먹기 시작한 것이 바로 물회라 한다.

물회로 먹을 수 있는 생선은 가자미, 광어, 우럭, 도미 등 다양하다. 죽도시장의 물회는 그 날 그 날 물 좋은 싱싱한 생선을 고를 수 있어 좋다.

생생하고 활기찬 바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구룡포항

1910년대까지만 해도 한적한 어항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항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경북 지방 최대의 동해안 어업기지인 구룡포항.

그러나 막상 구룡포항에 가 보면 의외로 작은 규모와 화려하지 않은 주변 경관과 분위기가 소박한 멋을 자아낸다.

한때 고래잡이로도 유명했으나 지금은 오징어잡이배와 대게잡이배가 포경선을 대신하고 있으며 과메기의 본고장답게 청어, 정어리 꽁치 등을 잡는 어선도 많이 드나든다.

배 들어오는 항구는 아침 일찍 가야 진가를 발휘한다. 밤새 조업을 마치고 항구로 들어오는 배에서 펄떡거리는 각종 생선이 끝도 없이 쏟아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

대게를 실컷 먹고 싶다면 구룡포수산업협동조합 위판장에 가 보는 것도 좋다.

매일 위판장에서는 배에서 갓 내린 해산물 경매가 벌어진다. 밤새 잡은 대게배가 들어오면 그 날의 경매물량이 결정되는데, 보통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에 경매가 이루어지니 찾아가보기에도 부담없는 시간이다.

배가 들어오고 대게와 각종 물고기가 내려지는 즉시, 알 수 없는 암호와 고성이 오가는 경매가 시작된다. 비릿한 항구의 냄새, 생생하고 활기찬 바다의 기운을 느끼고 싶다면 구룡포항을 꼭 가 볼 것을 권한다.

구룡포항에서 먹어볼 만한 음식은 모리국수. 모리국수는 갖은 해물과 칼국수를 넣고 고춧가루에 얼큰하게 끓여내는 해물 칼국수인데, 아귀와 새우, 홍합, 미더덕 등 다양한 해물로 인한 진한 육수가 일품이다.

지금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 과메기&피데기

11월부터 음력설까지, 구룡포에서 자동차로 호미곶 해안 도로(929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한 집 걸러 한 집에서 과메기를 말리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행여 구름이 껴 비가 오지 않을까, 날이 푹해져 과메기가 상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있다.

과메기는 청어나 꽁치를 냉동과 해동을 반복하여 바닷바람에 건조시킨 것으로 포항의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하우스재배나 냉동보관 등으로 제철 먹거리의 개념이 많이 사라진 요즘, 딱 겨울에만 맛볼 수 있는 과메기는 오히려 희소성이 느껴진다.

과메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년 겨울 열리는 구룡포 과메기 축제에 참가하는 것도 좋다.

구룡포에서 생산된 과메기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구룡포 부녀회에서 준비한 꽁치탕, 과메기, 물회 등 다양한 먹거리를 즐길 수 있다.

흔히 반건조 오징어라고 불리는 피데기는 오징어에 비해 씹는 맛이 부드럽고 담백해서 남녀노소 모두 좋아한다.

동해안 청정지역에서 생물 오징어를 잡아 약 70% 가량 건조시켜 1~3일 말리게 되는 반건조 오징어를 경상도에서는 피데기라고 부르는데 이 피데기는 30% 이상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 마른 오징어에 비해 말랑말랑 부드럽다. 또한 담백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단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포항의 피데기는 청정한 바닷바람과 햇살에 자연건조시키기 때문에 오징어 몸통에 핏줄이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신선도가 높고 빛깔은 하얀빛을 띄며 두께가 전체적으로 균일하다.

피데기를 고를 때 주의할 점은 개수나 크기보다는 마리당 무게가 중요하다는 것. 오동통한 정도, 즉 두꺼운 것이 실하고 맛있는 피데기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정수원(딜라이트 스튜디오, 02-512-7060)
취재 김홍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