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법안 '직권상정' 입법권 훼손 논란에도 거듭 압박
국회선진화법 주역, 과거 MB정부 직권상정엔 반대 '모순'
청와대와 여당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압박이 거듭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사진)의 '모순 정치'가 도드라지고 있다.
박 대통령 자신이 당 대표이던 시절이나 현역 정치인으로 활약할 당시 내세운 원칙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상반된 행보로 나타나면서 '원칙과 신뢰'라는 자신의 상징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결국 대통령 스스로 의회주의를 무시하고 민주적 대통령제의 정치규범을 위반하면서 민주적 정치운영에 대한 무능을 드러내는 꼴이라는 날선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경제활성화-노동관련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정의화 국회의장을 향해 전방위로 '직권상정'을 압박하는 모습은 그의 모순정치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 무엇보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조건을 강화한 국회선진화법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 만들어낸 '정치쇄신'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 국회선진화법, '박근혜 쇄신안' 결실…정치력 발휘보다 '압박'으로 돌변 = 국회선진화법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예산안이 날치기 통과되고 폭력 국회가 반복되면서 여론이 극심하게 돌아서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내놓은 정치쇄신안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한 '뼈를 깎는 쇄신'이었다.
박 비대위원장과 친박계, 당시 남경필, 김세연, 황영철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이 힘을 합쳐 '폭력국회'의 주범인 의장의 직권상정을 극도로 제한한 국회 선진화법을 발의했다.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날인 2012년 5월 2일. 당시 여야는 찬성 127명, 반대 48명, 기권 17명으로 법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켰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황우여 현 사회부총리 역시 선진화법의 주역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위기에 빠진 당과 자신의 대선 승리를 위해 '식물국회'라는 반대와 우려에도 "18대 국회에서 처리됐으면 좋겠다"고 의원들에 호소하기도 했다.
여야 합의를 강조한 국회선진화법의 명분은 말 그대로 다수의 횡포를 막고 소수의 의견을 포용하는 선진적 국회의 모습으로 쇄신하자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때문에 선진화법의 묘미는 여야의 '정치력'강화에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력 발휘보다 제왕적 권한으로 여당에 하달하고 압박하는 방식의 권력 통치만 강화하고 있다.
특히 당시 18대 후반기 국회의장 직무대행이던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회선진화법을 반대했다는 점이다. 정 의장은 2012년 4월20일 기자회견을 통해 "식물국회가 될 것"이라며 "당사자인 19대 국회의원들이 심사숙고해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여야 정치권 관계자들은 정 의장의 의회주의 원칙에 따른 소신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정 의장이 선진화법을 반대했지만 여야 합의 처리가 된 이상 의장으로서 지켜야하는 게 원칙이라고 보는 것"이라며 "의회주의자임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원칙을 훼손할 수는 없지 않겠나. 또 직권상정 조건인 '국가 비상사태'라는 것이 지금 (청와대와 여당 주장이) 과한 측면이 있으니 반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경제전망도 말 달라, 與 '비상상황' vs 경제팀 '낙관' = 또한 경제활성화-노동관계 5법에 대한 청와대와 여당의 직권상정 압박 명분 역시 약하다는 지적이다.
'국가 비상사태'와 '경제위기'를 연일 반복하며 압박하지만 정작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경제팀의 경제전망은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현기환 정무수석과 원유철 원내대표는 비상상황을 강조, '제2의 외환위기'라고까지 말하지만 최 부총리의 경제팀은 '2016년 경제정책방향' 발표에서 내년도 실질 국내총생산(GDP)성장률 전망치를 3.1%로 민간 경제연구기관 보다 높게 잡았다.
결국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은 경제위기, 국가 비상사태에 따라 불가피한 쟁점법안 직권상정이 아닌, 박 대통령의 관심법안 연내처리 집착에 따른 직권상정에 불과한 셈이다.
□ MB '미디어법' 직권상정에 반대 = 박 대통령의 모순정치는 직권상정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박 대통령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반대했다.
당시 신문, 대기업의 방송진출을 허용하는 미디어법을 두고 여야가 격렬히 대치한 상태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한 강행처리는 시도하려고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미디어법이 직권상정되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2009년 2월 이명박 대통령과 오찬회동을 한 후 "쟁점법안일수록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권상정에 반대했다.
의회를 무시하는 행태 역시 지난 국회법 거부권 파동 당시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 6월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권한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86.5%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박 대통령은 위헌소지와 삼권분립 정신 훼손을 이유로 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현역 의원이던 지난 1998년과 1999년 행정입법이 모법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으면 국회가 의견을 제시하고 행정기관장은 그 의견을 따르도록 의무화하는 법률안을 두 차례 공동 발의한 바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법안 처리에 집중하다 보니 국회가 마음에 안드는 것 같다"며 "하지만 선진화법을 본인이 주장했기 때문에 국회를 비난만 하기보다 야당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정부가 핵심적으로 추진하려는 법안이라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