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부산지방국세청 대강당.
국세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원정희 부산지방국세청장(이하 원 전 청장)의 명예퇴임식이 열렸다.
그의 퇴임은 단순히 한 사람의 국세공무원이 퇴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원 전 청장과 함께 마지막 군특채 출신이었던 최남익 국세청 50년사TF팀장이 오는 31일(목요일) 정년퇴임을 하게 되면, 국세청에 더 이상 군특채 출신 간부는 남지 않게 된다.
1977년 군특채 1기 출신들이 국세청에 입문한 이후 마지막 기수인 10기까지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명맥을 이어온 군특채 출신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군화 대신 '구두', 총 대신 '계산기'
소위 '유신사무관'으로 통칭되는 군특채 출신 사무관은 군부독재 시대의 유산이다.
유능한 사관학교 출신 인재들이 군 인사적체 등으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한 채 불만만 쌓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파해법으로 1976년 3월 사관학교 출신 대위급 간부를 5급 사무관(당시 3급)으로 특채, 각 정부 부처에 배치하는 방안이 마련됐고 1977년 11월 첫 특채 기수가 배출됐다.
이후 1987년까지 기간 동안 총 784명이 군인의 길을 접고 중앙 부처 행정관료로 특채됐다.
국세청에도 1기~10기까지 총 66명의 군특채 출신들이 유입됐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단박에 사회적 논란으로까지 번졌을 일이지만 '군인들의 시대'였던 당시에는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힘든, 그런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작정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것은 아니다. 꽤나 난이도가 높은(?) 특채 시험에 통과해야만 했기 때문에 육사 출신 중에서도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이들만이 간택됐다.
초창기 '굴러들어 온 돌' 취급을 받으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던 이들은 점차 수적인 증가와 더불어 조직에 녹아들면서 국세청의 한 축을 떠받치는 '인재집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군사정권이 종식된 이후에도 상당수는 '출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인정받으며 중추세력으로 중히 쓰여졌다.
국세청에 전입한 66명의 군특채 출신을 기수별로 살펴보면 1기 7명, 2기 8명, 3기 7명, 4기 7명 ,5기 9명, 6기 4명, 7기 6명, 8기 7명, 9기 5명, 10기 6명 등이 전입했다. 공군 또는 해군사관학교 출신들도 있었지만 4~5명 수준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었다.
이 중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최초 임용됐던 직급(5급 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접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기관급(세무서장) 이상 반열에 올랐으며 특히 이 중 17명은 3급 이상 고위직으로 진출했다.
공직사회 직급서열 기준으로 '준장(별 1개)'이 부이사관급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군인으로서 달지 못한 별을 행정공무원으로서 달게 된 셈이다.
전체 인원 중 25%가 넘는 인원이 고위직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는 이야기는 어떤 측면에서 특혜 수혜계층으로 볼 여지가 크다. 다만 군특채 출신들의 고위직 진출을 둘러싸고 '특혜시비'가 일어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특정 직위 및 최고위급(1급) 진출이 아예 허용되지 않는 등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혀 있던 측면도 크다.
실제로 지방청장까지 지낸 이들은 총 10명으로, 유학근 전 광주청장(1기), 강일형 전 대전청장(3기), 이명래 전 광주청장(3기), 이병대 전 부산청장(4기), 김기주 전 광주청장(7기), 김광 전 광주청장(8기), 김창섭 전 대전청장(8기), 김경수 전 대전청장(10기), 강형원 전 대구청장(10기), 원정희 전 부산청장(10기) 등이다.
군특채 출신 최초이자 마지막 1급 지방청장으로 남은 원 전 청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2급 지방청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접었다.
군특채 출신들 중에서도 가장 인재가 많았던 기수는 마지막 기수인 10기(육사 기수 36기)였다.
군특채 출신에게는 허용되지 않던 본청 조사국장은 물론 1급 지방청장(부산)에까지 오르며 국세청 50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원 전 청장을 필두로 지방청장급으로 분류되는 국세공무원교육원장(박의만)을 포함해 10기 6명 중 4명(김경수 전 대전청장, 강형원 전 대구청장)이 지방청장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10기 출신들은 고위공무원 승진 이전에도 선배 기수들을 보란듯이(?) 제치고 주요 포스트에 줄줄이 기용되는 등 능력을 인정받은 세대였다.
대체적으로 군특채 출신들은 '사건사고'에 엮이지 않고 순탄한 공직생활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썬앤문 감세사건에 연루된 홍성근 전 국세청 감사관 등 극히 일부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금품비리 등 개인적 일탈로 구설에 오른 케이스는 사실상 없었다.
이는 이들이 유신사무관이라는 결코 달갑지 않은, '태생적 한계'를 스스로 인식해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과 융화되고 '자기관리'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