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관세청 고위직 인사…"어디부터 꼬였나"

관세청이 1자리(차장) 뿐이던 1급(고위공무원 가급) TO를늘리는 등 호기롭게 새해 첫발을 내딛었지만, 꼬일 대로 꼬여버린 고위직 인사에 모두가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새롭게 생긴 1급 TO, 인천본부세관장 자리에 김대섭 세관장이 임명됨에 따라 기존 본부세관장들인 차두삼 전 인천본부세관장과 박철구 전 인천공항세관장의 위치가 난처해졌다.

당초 김 세관장이 1급으로 격상되는 인천본부세관장에 기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두 세관장이 모종의 결심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관세청 내부에 돌았지만 차 전 세관장은 인천본부세관 수출입지원국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박철구 전 세관장은 대기발령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 세관장이 사표가 아닌 '자존심'을 내던졌다는 이야기가 관세청 안팎에서 들려오고 있으며 관세청 직원들조차도 비정상적 인사가 단행됐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의 예상을 깨뜨리다" 

관세청은 지난 18일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인천공항세관과 인천본부세관을 통폐합했다. 관세청 전체 정원 4059명 중 1364명이 근무하는 대규모 본부세관이 만들어 진 것이다.

덩치를 키운 통합 인천본부세관은 관세청 최초의 1급지 세관이 됐다. 누가 1급 공무원으로 영전해 인천본부세관장 자리에 오를지, 조직개편 소식이 전해지던 시점부터 관세청 안팎의 관심은 온통 여기에 쏠려있었다.

기존의 4대 본부세관장(서윤원 서울본부세관장·정재열 부산본부세관장·박철구 전 인천공항세관장·차두삼 전 인천본부세관장)에게 자연스럽게 포커스가 맞춰졌다.

이들은 모두 행정고시 출신으로 4대 본부세관장만 각각 2번 이상 역임하는 등 전례없는 인사의 주인공으로 각광받으며 관세청 내 최고의 베테랑이라 불렸다. 관세청 최초의 1급 세관장은 이변이 없는 한 이들 가운데서 나온다는 전망이 파다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린 자리에는 이들의 이름이 없었다. 김대섭 세관장이 관세청 최초의 1급 세관장은 물론, 비고시 출신(7급 공채) 최초로 관세청 1급 공무원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파격 인사에 관세청 안팎 '발칵'"

사실 김대섭 세관장의 내정 소식은 18일 공식적인 관세청의 인사발표가 있기 전부터 관세청 안팎에 이미 떠돌고 있었다.

이에 지난 13일 관세동우회·이관회·관우포럼 등 전직 관세청 퇴임 공무원 모임들은 호소문을 통해 김대섭 세관장의 임명을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호소문에서 이들은 통합인천본부세관장으로 내정된 사람은 통관, 조사 심사 등 관세청 본청 주요과장 경험이 전무하고 본부국장 경력도 없으며 주요 4대 본부세관장 경력도 없고 국장급 경력도 3년여에 불과한 사람이라고 깎아 내렸다.

이어 1급인 인천본부세관장의 최소한의 자격요건으로는 관세청 본청에서 통관 조사, 심사 등 주요과장직을 역임하고 본부국장 및 인천, 인천공항, 서울, 부산 등 주요 4대 본부세관장 경력이 있는 사람이 적격자라고 생각된다며 대놓고 인사에 관여하는 상식밖의 모습도 연출했다.

김대섭 세관장은 실제 이들의 호소문대로 본청에서의 과장 근무 경험이 운영지원과장 뿐이며, 본청에서 국장을 역임한 적도 없었다.

광주·대구세관장으로 일하긴 했지만 4대 본부세관장 경험은 없다.

또 하나 눈여겨 보아야할 점은 관세청이 비고시 출신들의 '무덤'으로 불린다는 점이다. 김대섭 세관장이 중앙공무원연수원으로 파견 나가 있을 당시 관세청 고위공무원 15명 가운데 14명이 행시 출신이었다. 비고시 출신 인사가 고위공무원이 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관세청 최초의 1급 세관장에 올랐으니 반전의 강도는 더욱 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왜?"

같은 1급이지만 관세청 차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파워를 갖게 될 것이라는 인천본부세관장. 그렇다면 왜 관세청은 김대섭 세관장을 관세청 최고의 요직에 앉힐 수밖에 없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후보군들로 불렸던 이들 모두 각자의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엔 이돈현 관세청 차장과의 역학관계가 있었다.

박철구 전 인천공항세관장은 이돈현 차장(행시 29회)보다 후배 기수인 행시 30회지만 같은 호남출신 인사라는 것이 걸림돌이 됐다는 전언이다. 관세청 내 2자리 밖에 없는 1급인데 둘 다 호남 인사를 쓰기엔 부담이 된다는 것.

아울러 차두삼 전 세관장은 행시 27회로 이돈현 차장보다 행시 기수가 앞서기 때문에 적절치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재열(행시 26회) 부산세관장, 서윤원(행시 27회) 서울세관장 역시 마찬가지 논리에서 선택지에서 이름이 지워진 것으로 전해졌다.

본청 국장 가운데에는 정일석 기획조정관(행시 30회)이 있지만 나이(1961년 출생)에 여유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본인이 승진을 고사했다는 후문도 들려왔다.

더구나 행시 30회 이후에는 인적 자원이 없다. 현재 관세청 고위공무원 중 행시 31회~35회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비고시 출신으로 눈을 돌려야 했는데 김대섭 세관장을 적임자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언이다.

행시편중 인사, 회전문 인사…만천하에 드러난 관세청의 '민낯'

관세청 관계자들은 적임자 여부를 떠나 이번 인사를 통해 관세청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행시 출신 고위공무원만 끌어 올린 결과 급하게 쓸 인적 자원이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상대적으로 같은 세입기관인 국세청은 비고시 출신 인사를 일찌감치 키워 행시 자원이 부족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국세청 차장, 서울지방국세청을 비롯한 국세청 내 최고 요직을 비고시 출신들이 두루 역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관세청장이 기재부 등 외부에서 임명되는 관례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1970년 관세청 개청 이래 27명의 관세청장이 임명되었으나 자체승진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내부 승진으로 관세청장이 됐다면 사무관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던 이들의 인사문제에 당연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외부 인사이다 보니 이 같은 문제에 다소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앞으로 명맥이 끊어 질 것으로 보이는 관세청의 명퇴 관행이 이번 인사를 꼬이게 만들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초 관세청 고위직 직원들은 후배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 2년~3년여를 남겨둔 시점에서 명예퇴직을 선택해 왔으나 지난 세월호 참사로 인해 관피아 논란이 일자, 기존의 4대 세관장들은 관세청을 떠나지 않고 있다.

고위직 공무원들에 대한 취업제한이 걸려 끝까지 공직을 떠나지 못한다는 것. 실제로 '회전문 인사'라는 오명도 뒤집어썼지만 4대 세관장들은 자신들끼리 지역을 바꿔가면서 최근까지 본부세관장 자리를 유지해왔다.

이에 일각에선 관세청이 이들의 명예퇴직을 유도하기 위해 '김대섭 카드'를 쓴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갈 곳 없어진 차두삼 전 세관장과 박철구 전 세관장이 퇴직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세청의 의중이 내포된 인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차두삼 전 세관장은 김대섭 세관장의 밑(인천세관 수출입지원국장)에서 일하게 되는 다소 서운할 수 있는 인사 조치를 받아들였고, 박철구 전 세관장은 대기발령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