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제2기 부가가치세 확정신고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25일 밤, 전국의 많은 세무회계사무소 직원들은 뜬 눈으로 '악몽'을 꾸고 있었다.
2~3시간 후 시침이 자정을 가르키면, 신고불성실 가산세 등 가차없는 패널티가 부과되는 상황에서 국세청 홈택스가 마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졸이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흘렀다.
밤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짧막한 사과 멘트와 함께 신고기한을 연장(1일)한다는 국세청의 공지가 발표됐다. 허탈한 웃음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은 잠시, 전국의 세무회계사무소 종사자들은 국세청을 향한 '분노'를 일제히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상 초유의 부가가치세 신고기한 연장 사태.
사실 부가가치세 신고기한을 연장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2년, 2011년 제2기 부가가치세 확정신고 당시 신고납부 기한이 2일 연장된 전례가 있다.
2012년 당시 4일에 걸친 설 연휴(21일~24일)가 신고납부 기간에 절묘하게 걸리면서 신고납부 기한을 연장했었다. 당시 연장 결정도 매우 빠른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신고기한 도래 보름 전인 1월11일, 연장 결정이 내려졌고 납세자들에게 공지됐다.
현행 세법상 국세청장이 금융회사 등의 휴무나 그밖의 부득이한 사유로 정상적인 세금납부가 곤란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납부 기한 연장이 가능하다. 2012년의 연장 결정은 이 조항에 근거해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납세자의 편의와 행정의 편의를 동시에 잡는 '현명한 결정'이었다.
설 연휴 등 특별한 사정이 없었던 2016년 1월, 따지고 놓고 보면 국세청이 미리 알아서 신고납부 기한을 연장할 명분은 없었다.
일각에서는 신고기간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도 국세청 전산시스템이 먹통이 된 적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런대로 문제없이 진행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
하지만 신고기한 마지막 날이었던 25일 기어이 사단이 나고 말았다.
사단의 표면적인 원인은 마지막 날 너무 많은 숫자의 납세자들이 세금 신고납부를 위해 국세청 홈택스에 접속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날 일선 세무서 현장은 많은 납세자들이 몰리면서 말 그대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 중 일부는 서면신고서를 제출했겠지만 대부분은 국세청의 그동안 관행에 따라 세무서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홈택스를 통한 전자신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방식으로 국세청은 각종 세금에 대한 전자신고율을 높여왔고, 이를 '선진 전자세정'의 증표로 대내외에 선전해 왔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세금신고를 위해 기다린 시간이 길었을 뿐, 현장에서 홈택스 먹통으로 인한 잡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왜 유독 세무회계사무소 직원들만 애간장을 태우는 상황이 펼쳐졌을까.
국세청이 밝힌 이유는 세무회계사무소에서 사용하는 외부프로그램과 국세청 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이하 NTIS)과의 '충돌' 때문이다.
통상 외부프로그램으로 신고서를 작성하는 세무회계사무소에서 이를 국세청에 전자신고 하기 위해선 파일을 변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NTIS와 충돌이 일어나 과부하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신고부터 '오류검증기능'을 강화한 것이 주요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즉 사소한 오류까지도 잡아내는 바람에 신고가 지연되고 시스템이 결국 다운됐다는 것이 국세청의 입장. 국세청은 부랴부랴 오류검증기능을 삭제했지만 이미 버스는 멀찌감치 떠난 후 였다.
국세청은 이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까.
국세청은 이를 충분히 예측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종합소득세 및 부가가치세 등 주요 세목에 대한 세금신고가 매번 신고납부 마지막 날 대거 몰린다는 것은 지난 수 십년 동안 쌓인 경험칙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NTIS와 기업 및 세무회계사무소에서 사용하는 외부 세무회계프로그램과의 연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파악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도 국세청은 발빠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태를 악화시켰다.
1분 1초 애간장 타는 이들의 입장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시스템만 복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단의 근본적인 원인은 국세청이 납세자들의 마음을 조금 더 깊게 헤아리지 못했다는, 바로 이 대목이다. 사태 파악을 일찌감치 했다면, 한 발짝이라도 빨리 신고기한 연장 공지를 띄우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행정 편의를 위해 정해진 신고납부 기한에 맞춰 세금을 신고하기 위해 발버둥 친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보다 유연한 대처가 가능했을 것이다.
현행 세법상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고 신고기한을 하루 이틀 연장한다고 해서 세수에 막대한 타격을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늑장 대응의 댓가로 국세청은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 신세가 됐다. 세계가 인정하는 인터넷 강국, 2000억원 이상의 혈세를 들여 만든 최첨단 전산시스템을 보유한 대한민국 국세청의 자존심은 그렇게 한 방에 무너진 것이다.
신고기한 연장을 통해 이번 사태를 진정시켰다는 생각에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2월 개통 후 크고 작은 문제점을 노출시켜 온 엔티스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5월 종합소득세, 7월 2016년 제1기 부가가치세 신고 등 굵직한 세금신고 일정이 남아 있다. 예년처럼 납세자들은 신고기한 마감이 임박해서야 세무서를 찾거나 홈택스에 접속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과 같은 사태가 또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세청은 다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외부프로그램을 NTIS에 맞추기 위한 행정지도를 진행 할 예정이라고 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전형이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세청이 어떠한 변명과 이유를 내놓든 상관없이 일반 납세자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사태가 엔티스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키운 계기가 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지만 국세청이 이 판국에 "전자신고가 편하고 빠르니 전자신고를 해달라"고 요청한다면 일반 납세자이든 세무대리인이든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납세자들의 마음 한 구석에 싹 튼 '이번에도 또?' 라는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는 달랑 사과 한 줄 내보낼 것이 아니라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따라서 대대적인 엔티스 시스템 점검을 진행해서라도 노정된 문제점을 바로 잡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예측해 체계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선제적인 행정이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