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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이 도쿄에서 어학원을 다닐 때 눈에 보인 일본인들의 삶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깔끔한 복장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을 합니다. 그런데 일과가 끝나고 나면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넥타이를 머리에 두른 온갖 향락 문화에 젖어서 즐기듯 사는 사람들이 있고, 또 하나는 마치 그런 것을 경멸하듯 무도(武道) 도장에 와서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로 두 가지 부류로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다수 일반인의 일상이 비슷하게 보이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과 극과 극으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도 하나만 놓고 비교해 보자면 일본에 도장들이 성인들로 운영이 되는 곳이 많은 데 비해 한국의 도장들은 어린이들로만 운영되는 곳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럴까?'에 대한 질문에 대해 '원래 우리나라는 문(文)을 숭상해서 무(武)를 천시하였다'는 등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정답이라 할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앞에서 일본 사람들이 장남에게 보여주었던 두 가지의 부류에서 한 가지는 우리에게도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이 성인이 무도를 하지 않는 한 가지 이유가 되기는 하는 것 같다.
번듯한 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하루하루가 공사장에 노역과 같이 힘들고 전쟁같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성과의 압박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자영업자든 일을 하며 하루가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즐거움을 찾아 한잔하거나 보상이 될 만한 여유를 즐기려 한다.
술집을 찾거나 향락문화에 취하는 사람도 있고 명상이나 마사지 같은 좀 더 편한 운동으로 여유를 갖거나 휘트니스 센타에서 몸매를 가꾸며 자신을 위로하기도 한다. 친구들과 종일 수다 떠는 것을 낙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즐거움은 일상의 노력을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하고 보상받는 일 년의 행위들이라 할 수 있다. 한 주 동안 상처받은 사람들이 신앙생활로 주일마다 평안을 얻으려 하는 것과 다를 바도 없다.
편안한 휴식과 위안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무도는 관심 밖의 세상일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보였던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 사람들이 일과가 끝나면서 향락에 취해 넥타이가 이마에 걸려있는 사람들이나 휴식을 위해 술집으로 카페로 향하는 사람들이나 차이는 있겠지만 위로받고 싶은 보상 심리를 갖기는 매 한 가지다.
그렇다면 무엇이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무도 도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일까? 무슨 위로와 보상이 있기에 힘들기만 한 도장을 찾는 것일까? 만약 도장을 찾는 원인이 즐거움을 제공하고 재미가 있어서라고 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도장의 모습은 아니다. 트레이너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지친 심신에 활기를 불어넣는 휘트니스 센타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댄스학원에서 남녀가 춤을 추는 즐거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도장이 체력을 단련하고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데 효과가 탁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회원들이 그런 이유로 도장을 찾고 오랜 기간 수련을 한다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그런 이유로 잠깐 하다가 말아버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 평생을 통해서 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띠를 수시로 바꿔주며 즐겁고 재미있게 유도할 수 있겠지만, 성인에게는 그런 것으로 동기유발이 지속하기는 어렵다.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가치를 아는 사람이 성인이다.
사람들이 도장을 찾는 이유는 많지만 정작 회원들이 평생을 통해서 자신이 하는 무도의 완성을 추구하려는 성인이 없다는 점은 한국 무술의 가장 큰 약점이다. 인생의 목적이 부유하게 살고, 잘 싸우는 것이라면 아무리 어른이라 하여도 아이이다. 스승을 찾아 무릎을 굽히지 못하는 것은 아이의 자존감으로 성인으로서의 성숙함은 없는 것이다. 이렇듯 무도가 교육적인 효과로서 그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실리만 추구하듯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만을 찾고 있다. 하나의 일에 전념하고 그것의 완성을 추구하는 곳에서 최고가 나오는 법인데 그저 편안하게만 살려고 한다.
그것은 무술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일에 완성을 추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돈이 될만한 것을 좇으며 유행에 따라 간판을 바꾸는 식당과 같다. 일하고 즐기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이 오직 실리만을 좇으면 앞에 글에서 장남이 보았던 두 가지 선택의 길에서 즐거움만을 좇는 부류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가 자기 일에 전념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주변의 가족들은 생활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것이 아버지에서 아들로 옮겨지며 대를 이은 끝없는 어려움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한 나라에 그런 과학자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희생이 많다는 것이고 그 희생의 결과가 노벨상의 숫자로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와 같은 무도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한국 무도의 문제도 위와 같다. 한국에서는 무도와 스포츠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따라서 무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흔치 않다. 따를만한 깊이 있는 사범이 적은 것도 문제라 할 수 있다. 진정한 무도를 평생 추구하며 그 깊이를 완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람도 너무 없다. 대를 이어가며 완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었나 할 정도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도장에 왜 성인이 없을까 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 원인을 도장 바깥에서만 찾으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이너스와 플러스가 공존하는 사회가 건강하다. 모두가 한쪽으로만 추구하고 있다면 분명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성숙한 사회에 대한 교육적 효과로서 무도가 가지고 있는 가치는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즐길 거리를 찾아 나서는 사람과 도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힘든 수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윤대현 대한합기도회 회장(www.aikid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