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우리은행發 '세금추징 도미노' 긴장감 고조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정기)를 받은 후 수 백억원 규모의 세금을 추징당한 우리은행이 세무조사의 최대 이슈였던 '대손상각분' 추징세금에 대한 조세불복을 포기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세법이 규정한 적법한 절차에 따라 대손상각분을 손금처리해 온 부분에 대해 국세청이 세금을 추징하는 선례가 만들어진 꼴이 되면서 향후 세무조사를 받는 금융사들이 줄줄이 '세금폭탄'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우리은행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한 후 금융감독원장의 승인을 받아 손금처리한 대손상각분에 대해 수 백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금융사들은 우리은행이 조세불복을 통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만약 우리은행이 이에 대한 이의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않을 경우, 그동안 같은 방식으로 대손상각분을 손금처리해 법인세 부담을 줄여온 금융사들에게도 '세무리스크'가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은행의 조세불복 여부에 귀추가 주목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 '금감원장 승인' 뭉게버린 국세청의 세금추징 = 국세청이 우리은행에 부과한 세금추징액은 8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세금추징액이 크게 불어난 이유는 우리은행이 세법에 따라 금감원장 승인을 얻어 손금으로 처리한 대손상각분을 인정하지 않은 국세청이 600억원(추정) 규모의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은 500만원을 초과하는 채권의 경우 대손상각 후 손비 인정을 받기 위해 금감원장 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친 후, 금감원장의 승인이 확보되면 이를 손금으로 처리해 법인세 과표를 줄여 세금을 납부해 왔다.
현행 법인세법 시행령 제19조 2항 12호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장이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하여 정한 대손처리기준에 따라 금융회사 등이 금융감독원장으로부터 대손금을 승인받은 것'에 대해서는 손금 인정을 허용하고 있다.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부분에 대해 국세청이 세금을 부과했다는 소식은 금융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만약 이 부분에 대한 세금추징 선례가 남는다면 향후 세무조사를 받는 다른 금융사들에게도 국세청이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은행의 조세불복 여부에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됐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이 부분에 대한 조세불복을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해 버렸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조세불복 신청기한이었던)지난 2일 오후까지 (이 부분에 대한)조세불복 제기 여부를 결정하지 못해 (조세불복 제기를)포기했다"고 전했다.
대신 우리은행은 임직원들에게 나눠 준 스톡옵션(stock option/주식매수선택권) 등 성과급 손금부인으로 발생한 200억원 규모의 세금추징에 대해서만 조세불복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 은행권, "밀약설 사실이냐" 와글와글 = 우리은행이 장고 끝에 조세불복 제기를 포기한 것과 관련 안팎에서는 대손상각비 손금처리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가 첫 케이스인만큼 총대를 메고 국세청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금융업계에서는 최초로 이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괴담처럼 떠돌던 국세청과 우리은행의 '밀약설'이 기정사실화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대손상각분에 대한 불복 요건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포기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그동안 조세불복 여부를 고민했다는 점 등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세금추징 과정에서 국세청과 우리은행 사이에 모종의 밀약이 있었다는 설이 더 설득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국세청이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제기해오지 않다가 갑자기 이 부분을 문제삼은 것 자체부터 이상하다"며 "이는 단순히 우리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세청에게 여지를 부여한 꼴이 됐으니 향후 금융사들이 줄줄이 세금폭탄을 맞게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