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국세청사 전경.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 이른바 '유령회사'라 불리는 페이퍼 컴퍼니를 조세회피처에 세운 한국인 등이 포함된 명단이 공개되면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지난 4일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중미 파나마의 최대 법률회사인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의 내부 유출 자료를 분석해 발표했다.
'파나마 페이퍼'로 불린 ICIJ의 이번 프로젝트에는 영국 BBC와 프랑스 르몽드, 한국 뉴스타파 등 전 세계 100여개 언론사가 참여했으며 유출 자료 가운데 'Korea'로 검색된 파일은 모두 1만5000여건, 한국 주소를 기재한 한국인은 195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세청, 어디까지 알고 있었나?
특히 명단 가운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세청이 향후 세무조사에 착수할 지 여부에 눈과 귀가 쏠린 상황이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노씨는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3개의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국세청은 명단이 공개된 이들은 물론 국제공조를 통해 탈세혐의와 관련된 정황이 포착되면 즉시 세무조사에 나설 예정이라고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비쳤을 뿐 차분한 모습이다.
얼핏 보면 언론을 통해 명단이 공개되자 국세청이 쫓겨(?) 세무조사에 나서는 모양새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국세청도 언론의 명단공개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정보는 대부분 입수하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 간 공조를 통해 조세회피처, 페이퍼 컴퍼니 등과 관련한 정보를 다수 확보하고 있으며 탈세 여부를 가려내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이번에 공개된 명단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탈세와 관련해 과세당국간의 활발한 공조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정보는 이미 공개된 명단을 넘어설 정도로 충분히 갖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명단 공개, 오히려 국세청엔 '독'?
국세청은 명단이 공개된 이들은 물론 국세청이 갖고 있는 정보를 통해 역외탈세에 대한 조사를 엄정히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세청은 뉴스타파가 지난 2013년에 공개한 조세회피처 관련 자료를 입수해 48명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 총 1324억원을 추징한 바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후 국세청은 추가 조사를 실시해 당시 보다 많은 추징금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국세청은 조세회피처 관련 명단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에 대해 그리 달갑지 않다는 입장이다. 명단이 미리 공개되어 버리면 국세청의 조사를 예상한 이들의 증거 인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버리는 꼴이 되어버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해도 건질 것이 없어지는 그런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세청도 방대한 정보를 알고 있지만 명단을 공개를 할 수도 할 필요도 없는 일이라 생각 한다"며 "지난 2013년 1차 공개 때도 국세청 입장에선 애를 먹은 부분이 있다. 진정으로 공익을 위한다면 엄정히 법에 의해 조치를 받게 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특히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고 모두 국세청으로부터 조사를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질적으로 페이퍼 컴퍼니는 원할 경우 합법적으로 세계 어디에서든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고 모두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국내 비거주자가 있을 수 있고, 정상적으로 신고한 이도 있을 수 있다"며 "반드시 조사해야 되는 사람은 수많은 정보를 통해 추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국세청에서 왜 조사를 안했냐고 하는데 역외탈세와 관련해서는 대부분의 나라가 공조를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정상적인 페이퍼컴퍼니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옥석을 가리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세무조사권 남용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세청은 역외탈세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비로 올해 75억6600만원의 예산을 사용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국비업무여비 19억8000만원, 특수활동비 45억6000만원, 사업추진비 3600만원, 특정업무경비 9억9000만원이 포함됐으며, 조세회피 등 역외탈세와 관련한 정보는 주로 특수활동비나 특정업무경비에서 지출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