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인의 기본재산은 손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수익용 재산을 운용하여 그 과실로 목적사업을 하게 된다. 그런데 금리의 인하로 종전의 자산운용수익으로는 목적사업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경제사회적 여건의 변화는 종전의 운용의 틀을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익법인의 설립·운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주 겨우 공익재단의 기본재산의 일부를 주무 관청의 허가를 받아 공익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였을 뿐이다. 미국에서 매년 기본재산의 5% 이상을 의무적으로 공익사업에 환원하도록 하는 최소 사회환원금 제도를 두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공익법인은 우선 설립부터 쉽지 않다. 각기 다른 기준을 갖고 있는 주무 관청의 허가가 필요하고 운용에 있어서도 재정적 위험이 있다 하여 허용되는 것만이 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세제를 살펴보자. 공익 목적을 정책적으로 고려한 기부에 대한 증여세 감면, 취득세 등의 면제가 핵심이다.
공익재단에 대하여는 세제감면과 아울러 사후관리도 엄격하다. 3년 이내에 고유목적 사업에 사용하지 않으면 증여세, 취득세가 추징된다. 이 경우 증여세율도 높고 가산세까지 붙게 되면 재정적 기초가 어렵게 된다.
독지가 황필상씨가 수원교차로 주식의 90%를 출연하여 설립한 구원장학재단에 부과된 증여세 140억원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된 지 5년째가 되었는데도 아직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그 사이에 기부자 황필상씨는 연대납세의무자로서 가산세 포함 225억원을 부과받았다. 5% 초과 주식기부에 대하여 증여세의 면제를 배제한 입법은 1994년에 이루어진 것이다. 재벌들이 세금을 면제받고 재단을 통하여 그대로 지배권을 행사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가장 자본주의 국가라는 미국에서는 상속세 폐지 논쟁 때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의 부자가 입법 저지에 앞장섰다. 요즈음 경제가 어려워지자 부자들은 자본이득세 증세, 상위 1% 부자 증세를 자청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러한 부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증여세에 있어 새로이 도입된 증여의제나 포괄주의 입법은 부자들의 지나 친 세금회피 욕심을 막기 위한 대응책으로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세법이라는 것은 앞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혜택을 누린 계층이 떠난 다음에야 입법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세법에 익숙하지 못한 애꿎은 선량한 기부자만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황필상씨 사건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공익법인의 설립은 사회에 대한 기부활동의 일환이다. 공익법인 혹은 개인은 기부로서 세금으로 하여야 할 일이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하기 어려운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을 한다. 그렇지만 공익법인이나 기부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동안 재벌들이 공익법인을 설립하거나 기부하게 된 것은 형사책임을 완화하거나 절세, 혹은 우회적인 기업지배라는 다른 목적이 드러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부에 대하여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감동을 주는 착한 기부가 아니라면 국민은 박수를 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기부의 활성화와 기부문화의 성숙은 절실한 과제이다.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기부는 상생의 장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기부에 대한 세법은 거꾸로 가고 있다. 세수를 위하여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혜택을 낮추었고 그 여파로 기부액이 대폭 줄었다. 착한 기부, 풀뿌리 기부에 대하여 기금운용 및 세제운용에 있어 규제만이 아닌 지원과 장려가 필요하다.
공익법인 지원 세제도 현실에 맞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남용을 막기 위하여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법제는 빈대 잡기 위하여 초가를 태우는 격이다. 재벌 밉다고 졸속 개정한 면세점 입법이 가져온 엄청난 소모적인 낭비를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옥석을 가릴 수 있는 규정을 만들면 된다. 황필상씨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 지나도록 관련 조항의 개정 움직임조차 없다는 것은 후진적이다. 위 사건이 공익법인 세제의 틀을 다시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세법전문가의 입장에서는 200억원이 넘는 재산출연과 재단설립 과정에 있어 주식기부 제한을 규정한 상증세법 규정을 어느 누구도 챙기지 않아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은 우리의 세법 수준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점에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