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식물국회'라는 혹평 속에 19대 국회가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19일 마지막 본회의를 끝으로 4년 임기를 마치면서, 19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의원입법) 1만개 이상(결의·규칙안 포함)이 자동 폐기됨에 따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따가운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19대 국회 임기 종료에 따라 '쓰레기통'으로 직행한 조세관련 입법안도 상당수다.
세법을 심의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현재 폐기대상 법안 중 절반이 세법과 관련된 법안이다.
2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대(2012년 6월~2016년 5월) 국회 기간 동안 기재위에 접수된 법안은 모두 1660건. 이 중 43%인 714건만 처리되고 나머지 946건(57%)은 계류 중이다. 계류 법안 중에서 조세특례제한법, 법인·소득세법 등 세법개정안은 463개(결의안 1건 포함)로 절반(48%)에 달한다.
폐기처분 될 운명에 처한 세법개정안의 대다수가 비과세·감면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비과세·감면 부분의 운용이 많은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151건으로 타 세목에 비해 가장 많았으며, 이어 소득세법은 76건, 국세기본법 36건, 법인세법 33건 등의 순이었다.
대체적으로 감세 또는 증세 성향이 짙은 법안들이 '외면'을 받았다. 비과세·감면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정부로서는 세금을 깎아주는 선심성 의원입법안에 힘을 실어주기 어려울 뿐더러, 세율인상 등 증세 정책은 정치권에서 표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특히 역외탈세 척결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정치권를 비롯해 정부의 행보와는 다르게 관련 법안들이 빛을 못 보게 됐으며, 청년들의 일자리로 직결될 수 있는 관련 세목 신설도 입법 추진에 실패했다.
감세 or 증세, 국회 '벽' 넘지 못하다
대표적으로 가업상속공제 제도의 적용 범위를 늘리는 방안이 '부자감세'라는 논란에 부딪혀 좌초됐다.
새누리당 강석훈 의원이 가업상속공제 적용을 받을 수 있는 대상기업의 매출액 기준을 3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늘리는 법안을 내놨는데, 이를 두고 아직까지 '부의 세습' 측면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다수여서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대기업에 비해 열악한 중소기업이 납부한 세액의 일정부분을 감면해주는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제도'의 지원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멈추게 됐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은 연간 요양급여비용이 해당 과세연도 총수입의 20% 이상인 의원·치과의원·한의원에 대해 중소기업특별세액을 감면하도록 하는 법안은 발의했다.
쉽게 말해 '동네병원'이 내는 세금을 깎아주자는 것이다.
매출액 5억원 이하 의원급 의료기관에 대해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하는 방안(새누리당 나성린 의원안) 등 비슷한 취지의 법안은 잇달아 나오면서 입법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였지만, 비과세·감면 정비라는 기조에 막혀 실패했다.
재정건전성이 불거질 때마다 터져나오는 법인세율 조정을 골자로 한 법안도 기업활동 위축 등의 이유로 모두 폐기 처분될 예정이다.
기재위에 계류된 법안 중에는 과세표준이 200억원을 초과하는 소득구간에 대해 법인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인상하는 안을 비롯해, 사내유보액 증가율이 높은 기업의 경우 법인세율을 탄력적으로 인상하는 방안 등이 대거 포진되어 있었다.
역외탈세방지특별법안도 2년을 넘게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법제화의 실패했다.
해당 법안은 국세청장이 5년마다 역외탈세방지 기본계획을, 1년마다 역외탈세방지 집행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국세청장 소속으로 '국제과세정보분석원'을 설립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청년일자리 창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를 신설하는 내용의 '청년세(稅)법'도 무산됐다. 법인을 대상으로 과세표준 1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의 1%를 청년세로 부과하는 것이 골자였는데, 증세 반발 등에 막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청년고용 창출 차원에서 근로장려세제(EITC)의 범위를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발목을 잡혔다.
또한 '국세청이 정권의 눈치를 안보도록 국세청장의 임기제(2년)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세청법도 흐지부지 됐으며, 기업들의 '중복 세무조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세무조사권한을 국세청으로 일원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제동이 걸렸다.
"공평과세 실현 높이고…남발 입법 규제해야"
19대 국회의원들의 뒤틀린(?) 입법 의욕이 스스로 올가미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의·규칙안 등을 모두 포함하면 19대 국회에 접수된 안건은 총 1만8735건.
17대 국회에서 접수된 7449건보다 두 배 이상 많으며,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인 1만3913건에도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19대 국회 법안처리율은 43.2%로, 17대 국회 56.8%, 18대 국회 53.5%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았다.
일단 '내고 보자'식 법안발의와 이후는 '나 몰라라'로 일관하는 무책임 의정활동의 결과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국회 벽을 넘지 못한 법안들은 19대 국회와 함께 그대로 사라진다.
다만 사회적 논란거리를 양산했던 법안들은 20대 국회에서도 살아나올 가능성이 높다.
뜨거운 감자인 법인세 조정 문제부터, 비과세·감면 정비, 세금 공제율 조정 등은 정부의 세법개정안이나 의원 입법안을 통해 자주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바꿔서 말하면 19대 국회에서의 폐기 처분이 내려진 법안들을 영영 볼 수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치적인 거래에 밀려 공평과세라는 정책 방향을 담고 있는 법안이 좌초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효과 등 충분한 논의 절차 없이 남발되는 법안 발의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20대 국회에서는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을 내놨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교수는 "정치적 타협 등의 영향으로 정작 성실한 납세자들을 위한 법안이 폐기가 돼서 아쉽다"며 "(20대 국회에서는)대기업을 위한 것들은 제쳐두고서라도 우선적으로 영세사업자 보호 제도와 성실납세자들을 위한 법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갑순 동국대학교 교수는 "의원입법안이 양적으로 발의가 남발되는 경우가 있다"며 "현재 입법안들이 너무 쉽게 발의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따질 수 있는 절차 등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