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주판.
국세청 개청 초기 당시 주판은 국세공무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1970년 전후로 국세공무원은 주산에 관해 국세청 내부적으로 실시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취득해야 했으며 세무관서별 주산 경진대회도 종종 열리곤 했다.
이후 전자계산기의 보급과 함께 주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단순한 전자계산기에도 나름의 '스킬'이 있는 법.
일부 국세공무원은 왼손으로는 전자계산기를 두들기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문서를 작성하는 고도의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전자계산기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전자계산기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정확하게 처리해주는 컴퓨터가 국세청에 놓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간단한 계산을 위해 전자계산기를 이용하는 직원이 있기는 하지만 막대한 정보를 저장해 둘 수 있는 컴퓨터는 국세공무원이라면 반드시 다룰 줄 알아야 되는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1966년 개청해 올해 50주년을 맞은 국세청의 업무는 경제규모와 국민소득 성장에 따라 복잡 다양하게 변모했다.
개청 당시에는 대다수의 납세자가 기장을 하지 않았고 과세당국은 추계과세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납세자와 과세당국의 마찰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국세청은 '근거과세' 확립을 모토로 삼고 근거과세에 필요한 환경 구축을 추진하게 됐다.
◆…1977년 국세청 전산실 모습.
하지만 과세자료를 통한 과세는 말 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프라 구축이 안 되어 있다 보니 일선 세무서 서류함은 과세자료로 가득 채워졌고 제한된 인력으로 자료를 적기에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컴퓨터를 이용한 자료처리시스템이 국세청에 도입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 전자세정의 혁명 '국세통합시스템'의 탄생
1967년부터 4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추진한 초창기의 전산화 작업은 컴퓨터 기술의 발달과 전산처리 경험의 축적에 따라 발전했다.
소득 자료와 세금계산서의 전산처리는 당시 새롭게 시행된 종합소득세와 부가가치세의 조기정착에 기여했다.
◆…1976년 전산실을 순시하고 있는 고재일 전 국세청장.
전산처리 업무영역의 확대기(1982년~1992년)에는 국세행정 전산화 5개년 계획을 2차에 걸쳐 시행하면서 과세자료 처리 중심에서 컴퓨터 활용 중심의 전자세정을 추진했다.
특히 이 시기 국세행정 전산화는 전국 세무서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업무를 온라인으로 실시간 처리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또 민원업무도 전산화되어 납세자 편의가 높아졌으며 세무공무원의 컴퓨터 활용능력도 급격히 성장했다.
초기의 자료처리 시스템으로 국세청은 과세자료를 집중적으로 처리함에 따라 근거과세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년 급격히 증가하는 자료에 전산처리 능력은 한계를 드러냈고, 국세청은 새로운 전자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1994년 본격적으로 시스템 구축에 착수한 국세청은 그해 12월 개발용 시스템인 본청 주전산기 및 관련 장비를 도입했고 1996년 본청과 지방청, 그리고 세무서 간 원거리 전용통신망 및 근거리 통신망 설치에 필요한 장비를 도입했다.
1995년 응용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했고 1996년에는 모의자료에 의한 시험처리를 실시해 프로그램의 정확성을 검증했으며, 과부하 테스트를 통해 안정성을 점검했다.
이렇게 해서 1997년 태어난 것이 현재 국세 전산행정의 기틀이 된 '국세통합시스템(TIS)'이다.
국세통합시스템은 국세청 기능별 조직개편의 기반이 됐고 홈택스, 국세정보관리시스템,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시스템(e-세로), 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NTIS) 등 세정정보시스템 선진화의 근간이 됐다.
◆…1997년 국세통합시스템 개통식.
□ 전자세정 '끝판왕'…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
국세통합시스템과 그 이후 구축된 홈택스, 국세정보관리시스템 등 국세행정시스템은 납세 서비스를 증진시키고 업무의 효율성을 개선함으로써 국가 재정수요의 원활한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국세통합시스템은 개통 20년이 지나면서 노후화에 접어들었고 급변하는 환경과 갈수록 높아지는 납세자의 요구 수준을 충족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울러 갈수록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직원들에게도 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에 국세청은 업무생산성 제고, 납세 서비스 향상, 분석시스템 고도화, 시스템 유연성 강화 등을 목표로 '차세대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차세대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는 2009년 전산실 연구과제 소모임에서 출발됐으며 그동안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2010년 전면개편계획이 수립됐다.
2015년 6월까지 5년 6개월 간 총 예산 2020억원이 투입되고 월평균 360명의 외주사업자가 참여된 시스템 구축 사업은 약 1800억 건의 기존 데이터를 차세대 시스템에 이행시키는 공공기관 최초의 대규모 사업이었다.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태어난 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은 초기 서버 불안정, 새로운 일처리 방법에 대한 숙지 미숙 등으로 다소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으나, 빠른 안정화 작업으로 국세행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4년 차세대국세행정시스템 추진단을 방문한 임환수 국세청장.
우선 기존에 개별적으로 운영되었던 홈택스, 현금영수증, 전자세금계산서, 연말정산간소화, 근로장려세제, 공익법인공시, 국세법령정보, 고객만족센터(현 국세상담센터) 8개 사이트를 통합, 사용자 인증을 각각 해야 했던 불편함이 해소됐다.
또 세무정보 제공범위를 34종에서 62종으로 확대하고 우편물 조회 출력, 신고서 등 각종 세무정보 조회, 해명자료 전자제출 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됐다.
아울러 세목의 수정신고, 경정청구, 기한 후 신고가 전자신고로 가능해 졌으며 신고서류, 증빙서류 등을 PDF 파일 형태로 온라인 제출이 가능하게 됐다. 또 공휴일에도 민원증명이 가능해 졌으며 민원증명 발급 대상도 기존 20종에서 41종으로 확대됐다.
이 밖에도 모든 문서와 관련 자료를 전자적으로 보관해 열람할 수 있는 '전자서고', 현장확인 업무의 통합관리 체계, 징수실적 관리 기능, 환급금 지급 오류 방지 기능, 불복 업무 통합관리 시스템 등 국세청에 필요한 대부분의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구축됐다.
향후 몇 십년간 국세청 전자세정의 발전은 차세대 시스템의 틀 안에서 구축될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국세행정이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