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내유보금 650조 라더니…금고는 '홀쭉'

10대 그룹 사내유보금 650조원 경기활성화위해 쓰자더니…

재무제표 분석 결과 실제 현금자산은 61조원 그쳐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뾰족하게 돈 나올데가 없자 정부도 가계도 국가예산의 2배에 육박하는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기대하고 있지만 막상 사내유보금에는 돈이 남아 있지 않아 기대만큼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해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시작했다. 기업에 쌓인 돈이 많으니 부족한 세수를 기업에서 보충하겠다는 것이다. 최근의 법인세율 인상 논란도 이러한 맥락에서 시작됐다는 해석이 많다. 

이러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지난해에는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의원이 "우리 1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612조원이며 대기업들은 고용과 투자를 하지 않고 곳간에 쌓아놓고 있다"고 지적해 대기업들이 돈을 풀어 재정은 물론 가계부채, 청년실업 등 사회적 이슈에도 도움을 줘야한다는 주장을 했다.

한마디로 돈이 필요한 곳에 대기업이 쌓아놓고 있는 돈을 갖다 써야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대졸초임 연봉이 2000만원 수준인데 10대기업 사내유보금의 1%인 6조원만 있어도 청년 30만명을 고용할 수 있다는 논리 등이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 재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내유보금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 마치 현금을 금고에 쌓아두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어 세금으로 환류하겠다는 정책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국내 10대 그룹의 지난해 연말 사내유보금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한 기준으로 652조원으로 집계됐다.

  10대그룹 2015년말 사내유보금 현황

                                                                      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삼성그룹이 254조원으로 전체의 39%를 차지하고 현대자동차그룹이 113조원으로 100조원을 넘었다. SK그룹이 71조원, 롯데그룹이 53조원, 포스코그룹이 52조, LG그룹이 46조원으로 50조원 내외의 사내유보금을 갖고 있다. 이밖에도 GS, 현대중공업, 한화, S-OIL이 5~23조원의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어 10위 안에 들었다.

기업집단이 아닌 개별기업을 기준으로 봐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모비스, SK텔레콤 등 전경련이 조사한 1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35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내유보금은 이익누계액...그동안 자산 구입에 대부분 사용

이렇게 정부도 야당도 600조원이 넘는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기대를 하고 있지만 막상 실제로 대기업이 쌓아 놓은 현금은 전체 사내유보금의 17%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을 현금이나 예금으로 쌓아 놓지 않고 이미 거의 다 써버린 셈이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설립된 이후 부터 현재까지의 이익을 더 해놓은 것이다. 물론 그동안 벌어들인 돈이라는 설명은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익이 지금까지 그대로 현금으로 남아있지는 않다는 것이 기업들의 설명이다.

대기업의 회계담당자는 "그동안 공장을 확장하고 설비·기계장치를 투자한 돈이 모두 사내유보금에서 나온 돈"이라며 "어느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수익도 나지 않는 은행에 그대로 쌓아 놓았겠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10대 기업의 지난 5년 동안 보유현금 잔액은 30~60조원 수준으로 개별 기업으로 보면 회사당 3~6조원 수준이다. 사내유보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4~20% 수준으로 사내유보금 대부분이 현금으로 남아 있지 않고 이미 다른 자산을 구입하는데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10대 기업 사내유보금 및 보유현금 현황

             * 보유현금은 현금, 현금등가물, 단기금융상품

기업들이 보유현금의 규모를 결정하는 것은 영업비용 지급이나 부채상환 등에 필요한 유동성 필요 수준을 가늠해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기업도 이익이 났다고 그것을 모두 현금으로 쌓아 놓지 않는다는 것이 기업들의 설명이다.

이렇게 현금으로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해 최근 논란이 많아지는 이유에 대해 재계에서는 가계나 정부의 재정상황이 어려워 대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대기업부설 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은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넘어서고 공공부문부채도 1600조원을 넘어서고 있는데 빚이 늘어 난다는 얘기는 그만큼 적자가 나고 있다는 얘기"라며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계속 거론되는 이유도 가계와 정부는 적자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대기업이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 달라는 얘기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와 정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면서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지면서 기업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