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공익법인에 특정 회사 주식을 5% 넘게 기부할 경우 세금(증여세)을 부과하는 '규제 족쇄'가 더 조여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기업인이 공익법인에 기부한 주식 중 '자기주식(본인 회사의 주식)'을 비과세 대상에서 제외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드는 만큼, 세금을 더 내고 기부를 하게 되는 꼴이다. 규제의 강화는 결국, '기부의욕'을 꺾어 버릴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공익법인 규제를 더 강화하겠다는 노선을 택한 이유는 공익법인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재벌 대기업들이 계열 공익법인에 주식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기업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상당하다.
이들의 편법을 막기 위해 5% 초과 주식기부에 대해 증여세 면제를 배제하는 입법이 지난 1994년 이루어졌다. 문제는 이 규제로 인해 편법과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애꿎은 기부자들이 낭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인 재산을 기부해 공익법인을 세우려다 엄청난 '세금폭탄'을 맞고 고통을 받고 있는 케이스가 존재한다. 수원교차로 창업자인 황필상 박사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 주식의 90%와 현금 등 215억원을 모교(아주대학교)에 기부했지만, 미처 챙겨보지 못한 세법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무려 225억원의 증여세를 부과받고 법정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정부는 2016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기부문화 활성화 차원에서 기부금 세액공제 시 적용되는 부양가족의 나이요건을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한편으로 공익법인 기부와 관련한 사전 규제를 더 강화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재벌의 편법이 두려운(?) 정부…재계 "기부 의지 꺾는 입법"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6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공익법인의 주식보유한도(5%) 계산 방법을 뜯어고칠 계획이다. 개정안은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총수'에서 자기주식은 제외하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정리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기업이 공익법인을 우회 지배하는 부분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비과세되는 공익법인의 주식보유한도를 조정하려는 방안은 논쟁거리였다.
규제 강화를 주장하는 이들은 "재벌 공익법인의 총자산 대비 계열사 주식 평균비율은 약 29%인 반면 배당률은 1.59%로 저조해 총수일가 지배구조 강화 목적이 크다"는 지적이다. '5% 규제' 체제하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보유한도를 더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선의의 기업주나 재산가의 재산 출연을 원천적으로 매우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아예 1994년 이전 수준인 20% 선으로 주식보유 한도를 환원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상태다.
정부는 세법개정안 발표 이전, 이 문제를 놓고 공청회를 연 바 있다.
당시 공청회에서는 공익법인이 보유 중인 재산의 일정부분을 반드시 공익활동에 쓰게 하는 '의무지출제' 도입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사후 규제 성격의 이 제도를 도입한다는 전제 하에 비과세되는 공익법인의 주식보유한도를 20%까지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계에서도 현재의 주식출연한도가 낮아 기부 활성화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정부에 제출한 세제개선과제 건의서를 통해 "순수 공익 목적을 위해 많은 주식을 기부한 기부자가 거액의 세금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사례가 발생한다"며 주식출연한도를 30%로 확대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다만 일정 요건을 충족한 이른바 '투명공익법인'에 한해서다.
그러나 정부는 주식보유한도를 늘려 사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주식을 기부했을 때 적용되는 사전 규제를 더 꽉 조이는 방향을 택했다.
"사후 규제 강화하고, 주식보유한도 풀어라"
공익법인 운영 실태에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맹목적인 기부 활성화 명분으로 주식보유 한도를 완화하자는 주장은 현재로서는 설득력을 얻기 힘든 형편이다.
이에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담보할 장치를 마련한다는 전제를 깔고 주식출연한도를 조정해야 한다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전 규제보다는 사후 관리를 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문수 법무법인 율촌 대표 변호사는 "공익법인에 기부를 하려면 주식을 팔아 기부하라는 소리인데, 개인 기부를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규제를 대폭 풀어야 한다"며 "공익목적에 쓸 수 있도록 제재하는 장치를 강화한 다음 주식보유한도를 풀고, 세액공제로 전환된 기부금 공제도 소득공제로 다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 변호사는 "공익법인의 남용과 불투명은 바로 잡아야 하지만 그 긍정적 역할을 살려가야 한다"며 "주식출연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었는데 이를 나쁜 쪽으로 활용했다면 혜택을 박탈하는 등 패널티를 부여하면 될 일이지 행위 자체를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윤태화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과 교수는 "개인들의 기부를 늘리기 위해서 공익법인의 주식출연한도를 늘리는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며 "보유한도를 늘리더라도 의무지출제를 도입하는 등 공익법인을 감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신 서울시립대 세무대학원 교수도 지난해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주최한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세제개편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배당의 강제 등을 전제로 해 공익법인에 대한 주식 출연비율 제한을 20% 정도로 완화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