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도로는 크게 남과 북을 잇는 도로인 평화로와 5.16도로 그리고 제주도를 크게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 한라산 자락을 이은 아름다운 산록도로가 있다.
한라산 1100고지를 넘는 1100도로와 산간지방을 잇는 중산간 도로 그리고 남원과 조천을 잇는 남조로, 제주시와 표선을 잇는 번영로, 또 크고 작은 도로가 제주도를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다.
◆…산록 도로의 모습
제주도는 이처럼 길을 잃어도 20분 이상 헤매지 않고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로가 잘 뚫려있다.
제주도 교통이 편리해진만큼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도로들 사이사이에 아름다운 제주 속살이 숨어 있어 차로 여행을 하다보면 숨은 비경을 놓치고 지나가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많은 제주도의 도로 중 한라산 자락을 돌며 한라산과 제주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산록도로는 남쪽과 북쪽 두 개로 제1산록도로와 제2산록 도로로 나누어진다.
제주도에서는 한라산의 산록을 가로지른다 해서 산록도로 혹은 한라 관광도로라고도 불려진다.
월평동 5.16도로에서 어승생 삼거리를 지나 애월의 평화로를 잇는 길이 22Km의 제1산록도로는 트레킹 코스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미 관음사를 걸어 본 사람이라면 어승생 저수지까지는 넓은 들판과 목장지 그리고 작은 오름들을 보았을 것이다.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어승생 삼거리~애월 평화로는 길이가 10km정도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다.
하지만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속살을 찾아보며 걷는다면 하루는 족히 잡아야 후회가 되지 않는다.
화장품 광고나 음료수 광고의 배경지가 제주도인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이 길을 걷다보면 느낄 수 있다. 사진에 전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색이 그대로 담긴다는 것을….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제주 정착 이주민 중 사진작가들이 유독 많다.
어떤 사진작가는 신혼여행을 와서 제주도에 반해 그때부터 정착해 아이들을 낳고 그 아들이 다시 사진과 영상촬영 일을 하고 있다. 부자는 그저 사진 속의 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도에 산다고 한다.
어승생 삼거리에는 고 박정희 대통령 때 중산간 지역의 식수원으로 활용하게 만든 어승생 저수지라고도 불리는 한밝저수지가 있다. 한밝은 넓고 크다는 뜻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표지판까지 썼다고 한다.
하지만 비경은 그 안에 숨어 있다. 지금은 식수원지로 보호되어 가까이 볼 수 없어 안타깝지만 한밝폭포와 자연이 만든 크고 작은 폭포들이 어승생 골짜기를 따라 물빛을 바위에 내비치고 있다.
자연은 거짓으로 살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가진 것 그대로 내어주고 바람이 머물다 갔는지 비가 다녀갔는지 거짓 없이 말해준다.
그래서 자연과는 쉽게 친해질 수 있고 자연을 닮고자 이런 길을 찾아 걷게 되는 것 같다.
산록도로는 걷다가 한라산 둘레길을 걸을 수도 있다.
◆…노꼬메 오름과 바리메 오름이 보이는 길
하지만 산록도로를 걸으면서 두 형제 오름인 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 그리고 바리메오름과 족은바리메오름을 지나칠 수는 없다.
◆…산새미 오름 입구
어승생 삼거리에서 30분 정도 걷다보면 산새미오름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오름에 샘이 있다하여 산새미오름이라 불렸다고 하는 말과 봉우리가 세 개라 삼산이오름이라는 말이 전해 오고 있으나 산심봉(山心峰)이라는 한자어 표기는 그다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산새미 오름은 오르는 길이 산길 그대로여서 옛길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오름정상을 오르는 길에서 신엄 목장 방면으로 들어가다 오름으로 오르다보면 새미오름으로 불리게 된 작은 연못을 볼 수 있다.
◆…한라산 자락의 목장지
다시 산록도로를 걷다보면 한라산 자락을 마음대로 뛰어 노는 말들과 가까이 만나볼 수 있다.
말들의 자유로움, 푸른 들판 그리고 파란 하늘을 마주한 순간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해도 절대 미소를 버리지 못 할 것이다.
콧노래가 나오면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 장단에 맞추어 팔을 흔든다 해도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선인들이 이 길을 지날 때 분명 시 한수는 읊었을 것이고 신선이 이 길을 지나갔다면 지금도 다시 찾아와 걷고 있을 것이다.
◆…노꼬메오름 입구 표지석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 더 없이 감사할 뿐이다.
노꼬메 오름을 오르는 길은 가을이 더 아름답다. 오름정상의 갈대가 우거진 모습은 그야말로 금빛향연이다. 노꼬메는 높은산이란 제주어이고 족은노꼬메오름의 '족은'은 '작은'의 제주어다.
크고 작은 노꼬메오름 형제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한참을 걸어 가야한다.
◆…노꼬메오름과 족은 노꼬메오름이 나란히 있는 풍광
쉬엄 쉬엄 걸어올라 노꼬메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정상 풍광과 제주 앞바다의 풍광은 흘린 땀방울에 대한 덤인 셈이다.
노꼬메 형제와 작별하고 다시 산록길을 걷다보면 우측에 바리메 오름이라는 표지석이 눈에 들어 온다.
◆…바리메오름 표지석
◆…바리메 오름 안내표지판
차를 타고 가다보면 지나치기 쉬운 곳이지만 걸어야 잘 보이는 표지석이다.
표지석을 따라 입구를 걸어들어 가면 바로 가까이 노꼬메오름 형제들이 배웅을 하고 있다.
바리메오름은 입구에서부터 언덕을 지나 내려가다 보면 저 언덕아래 오름이 있다.
◆…바리메 오름 가는 길에 보이는 노꼬메오름
언덕 위에는 말목장지가 넓게 펼쳐 져 있다. 제주도의 특색 중 하나가 이렇게 마을마다 공동 목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마을마다 갖고 있는 목장에는 소, 돼지, 말 등 가축을 공동으로 기르고 품앗이하며 살았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바리메 오름 앞 목장지의 말들
바리메는 절에서 공양하는 그릇인 바리떼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름처럼 그릇을 엎어 놓은 듯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다.
◆…바리메오름
오름은 그다지 높지 않아 쉽게 오를 수 있다.
◆…족은 바리메 오름입구
바로 주차장을 지나 조금만 더 걷다보면 족은 바리메오름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입구부터 방부목으로 바닥을 깔아 걷기 쉽게 만들어 져 있다. 족은 바리메는 제주도 희귀식물이 많이 살고 있어 만들어진 길 외는 다니지 말아야 한다.
유월에는 족은 바리메오름을 오르는 길에 산수국이 반겨준다.
◆…비밀의 숲길
제주도의 많은 숲길이 알려 져 있으나 바리메 오름을 지나 이어지는 숲길은 비밀의 숲이라고도 부른다.
제주도에서 산수국이 가장 많이 피어있는 곳 중 하나다. 숲길은 평평한 길로 만들어져 차가 다니기도 한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이 숲길의 산수국의 색은 마치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듯 찬란하다.
숲길은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들어갈 때 보지 못했던 나무와 꽃들이 나올 때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면 비밀을 간직하게 된 것이다.
산록길에는 먹을 곳이 없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나기 전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충분히 준비하고 나서야 한다. '한라산도 식후경'이라고 먹는 재미는 오름 정상에서 여럿이 싸 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얼려온 막걸리 한 잔이 제격이다.
제주 막걸리는 술을 못 하는 사람들에게도 유산균이 풍부해 한 번쯤은 꼭 맛보라고 권하고 싶다.
제주도민들이 흘린 피와 땀은 오늘의 산록도로를 만들어 냈다. 한라산 자락까지 돌멩이를 지어 나르고 어렵게 공사를 마무리 한 결과 오늘 날 쉽게 이 길을 지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바람도 구름도 어느 하나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아름다운 길. 그길 에서 또 다른 삶의 길을 마주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