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장관 해임건의안 빌미, 사상초유 與 '국감 보이콧'
野 단독 국감 진행…'우병우-최순실' 의혹 덮기(?)
26일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시작 전부터 정국은 '살얼음판'으로 변해 있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키면서 새누리당이 국감 '보이콧'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까지 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를 '거부'하면서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과 야당의 전면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비상시국'임을 강조하며 "비상시국에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26일 정세균 국회의장을 '의장' 칭호를 뺀 채 '정 의원'이라고 격하하기까지 했다.
□ 막가는 與, 국회의장 사퇴 촉구 "야당 하수인" = 새누리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정 의장이 해임결의안 표결 당시 '세월호(특조위 기간 연장)나 어버이 연합(청문회) 둘 중에 하나를 내놓으라는 건데 안 내놔. 그래서 그냥 맨 입으로..그냥은 안 되는 거지'라는 녹취된 발언을 공개하며 정 의장을 향해 "야당과 작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하수인"이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야당은 국민 앞에 사과하고 정세균 의원은 즉각 물러나라"며 "새누리당은 국정감사 일정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참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정현 대표는 이날 오후부터 정 의장이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단식 농성'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 의장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표결까지는 안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잘 안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 野 "세월호-어버이연합 연계는 박지원 제안, 정 의장은 조정자"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도 이날 CBS라디오에 나와 "세월호나 어버이연합을 야당이 받고 여당이 불리한 해임건의안을 하지 않도록 권유한 것으로 정 의장이 오히려 조정자 역할을 한 것"이라며 "해임건의안을 낸 주체는 저인데 처음부터 세월호나 어버이연합과 교환할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박지원 원내대표가 그런 제안을 했고, 정세균 의장도 극한적인 대결을 하지 말고 대화를 해보라고 권유한 내용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 것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의정활동의 핵심인 '국감'은 반쪽으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여당이 '국감 보이콧'을 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로 장관 해임건의안 문제로 국감 마비 사태까지 주도하는 상황은 집권당으로서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사진제공 청와대)
□ 朴 대통령 '비상시국' 강조, 박지원 "국회 윽박지르며 고비 넘겨" = 여당은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가는 주체다. 국감이라는 최대의 기회를 마다하고 장관 해임 건의안 통과에 목을 매며 야당과 '전면전'을 벌이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순실씨 비선권력 의혹과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을 덮으려는 의도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청와대는 박 대통령과 측근을 둘러싼 문제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비상시국', '위기'를 강조하며 야당을 단합을 헤치는 세력이라는 인식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정작 위기인 국가상황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역할이 박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있다. '국가 위기'만 고조시키면서 자신들의 위기에서만 빠져나가는 무책임한 태도라는 지적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시국을 내세우는 박 대통령을 겨냥, "대통령께서 비상시국이라 인정했다면 누가 자초했는가? 타개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가?"라며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을 제기한 언론과 야당을 윽박지르면 해결되는 비상시국이 아니다. (그동안) 대통령은 고비 마다 국회를 야단치고 책임을 떠넘기며 비상시국을 잘도 넘겼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회는 대화와 타협의 장소다. 왜 국회를 간섭하나. (김 장관을) 해임하셔야 한다"며 "혼자 가면 실패다. 국민과 국회, 야당과 함께 가면 성공"이라고 강조했다.
□ 김두관은 '자진사퇴', 김재수는 버티기(?) = 이번 해임 건의는 지난 2003년 당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 때와 흡사하다.
참여정부 첫해인 지난 2003년 '여소야대' 상황에서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밀어붙였다. 여당인 민주당(현 더민주)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해임건의안은 가결됐고 표결에는 한나라당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도 참여했다.
당시 청와대는 "해임건의를 수용하면 앞으로 어느 장관이 일할 수 있겠느냐"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이를 수용, 김두관 장관이 자진사퇴하는 방향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임명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장관에게 직무 능력과 무관하게 해임을 건의했다"고 가결의 정당성을 문제 삼았다.
역대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해임건의를 거부한 경우는 처음이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임기 말인데 레임덕을 걱정하는 것 아니겠나. 수용하면 대통령 힘이 더 빠질 거라고 보는 것"이라며 "북핵이나 지진 등으로 외우내환을 겪고 있고 측근 비리 의혹도 말이 나오고 있는데 장관 해임까지 되면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 국감 발목잡는 與, 우병우-최순실 의혹 감싸기 의도(?) = 그는 "김두관 장관을 해임하고 나서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박살이 났다"며 "야권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승부를 던진 것일 수도 있지만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야권 관계자는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여당으로서 너무나 무책임하다"며 "지금까지 여당이 국감을 보이콧한 경우가 있나. 20대 총선 민의를 그대로 수용한 적이 없다. 김 장관의 부적절한 언행과 비리는 국민들도 공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감을 이리 망쳐놓고 나중에 누구더러 발목을 잡았다고 그럴 수 있겠나. 우병우 수석이나 최순실씨 의혹으로 국감이 진행될 거 같으니 저러는 거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003년 김두관 장관 해임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는 지적에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이 장관 해임에 힘을 쓴 건 맞지만 2004년 총선은 노 대통령 탄핵 때문에 한나라당이 패배한 것이지 해임 때문이 아니다"며 "이번에도 새누리당이 막무가내로 국감을 보이콧 하고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후폭풍은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