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에 들 때 '고지의무'라는 것이 있다. 표준약관에는 '계약 전 알릴 의무'라고 표시한다. 이는 보험에 들고자 하는 사람이 보험사와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에 관련한 계약의 성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항을 알려야 하는 의무를 일컫는다.
사항은 질병을 앓았던 이력, 즉 병력(病歷)과 직업 같은 것이 꼽힌다. 보험사는 이에 근거해 보험계약 체결 당시 보험가입자가 고지한 건강상태를 자체 보험계약 인수기준에 따라 심사한 뒤 보험계약 인수여부를 결정 (인수, 거절, 조건부인수)한다.
문제는 이 '고지의무'를 둘러싸고 보험사와 가입자 간에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보험사들이 '가입자의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일방 해지하거나 변경하고 가입자들은 이를 '부당하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실제 2015년 4월 1일~2016년 3월 31일 1년 동안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보험계약 해지나 변경과 관련해 887건의 민원이 접수된 것으로 집계됐다.
민원은 '보험사가 경미한 과거 질병에 대한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전부 해지했다'가 주류를 차지했다. 또 '보험사가 동의 없이 보장내용을 일방 변경했다'는 게 주요 민원으로 분류됐다.
예컨대 피보험자 A는 난소제거수술을 받은 후 보험사 B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회사는 가입자가 가입 전 어깨관절 통증, 위식도 역류병으로 치료받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질병에 대해 보장하지 않겠다고 일방 통보했다.
민원인의 청구 내용은 “고지의무를 위반한 신체부위에 한해서만 보장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보험사가 전체 질병에 대하여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이에 “고지의무 위반 질병과 직접 관련 있는 신체부위 (우견관절, 위·십이지장·식도)에 한해 보장을 축소하는 조건으로 분쟁을 조정했다.
또 C보험사는 피보험자 D가 스키를 타다가 왼쪽 어깨를 다쳐 치료받은 후 보험금을 청구하자 보험가입 전 오른쪽 어깨를 다쳐 치료받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질병에 대해 보장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D는 민원을 내며 “고지의무를 위반한 신체부위에 한해서만 보장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C가 전체 질병에 대해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조정위는 이에 “고지의무 위반 질병과 직접 관련이 있는 신체부위 (우측어깨)에 한해 앞으로 5년 동안 보장하지 않는 조건”으로 조정했다.
E보험사는 피보험자인 F가 보험가입 전 허리통증으로 통원치료 받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으므로 향후 척추질환에 대해 보장하지 않는 조건에 동의할 것을 요구하며 만약 이에 응하지 않을 때 보험계약이 전부 해지된다고 통지했다.
F는 관련해 “보험가입 전 허리통증으로 단순한 주사치료를 받았을 뿐임에도 보험사가 척추질환을 보장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민원서를 제출했다.
조정위는 “F가 보험가입 1주일 전 요추부 통증으로 치료받은 사실이 확인되고 보험가입 전 허리통증 치료를 받은 사실을 알렸더라면 보험사는 보험계약 인수기준에 따라 척추질환은 보장하지 않는 조건으로 보험계약을 체결했을 것”이라며 “보험사의 업무처리가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했다.
금융감독원은 보험사와 가입자 간 다툼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내년 상반기 보험약관 개정을 통해 이 같은 고지의무를 위반했을 때 보험계약을 변경하는 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특히 보험계약자의 동의를 받도록 할 계획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회사는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요한 사항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알린 경우 회사가 별도로 정하는 방법에 따라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장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다만, 회사가 보험계약 인수기준에 따라 조건부 등으로 인수가 가능한 경우 보험계약자의 동의를 얻어 부담보를 설정 (이 특별약관을 부가)해 계약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금감원은 또 “보험계약 변경 시 고지의무 위반 병력과 직접 관련성이 없는 신체부위 (질병)는 보장에서 제외하지 않도록 보험약관을 바꾸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보험계약 해지여부 결정은 보험계약 체결 시 적용한 보험계약 인수기준을 따르도록 지도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특히 보험계약 해지나 변경할 때 그 사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변경 시 보험계약자의 동의를 받도록 지도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2017년 상반기 중 보험약관을 바꿔 고지의무 위반 시 보험계약의 변경 및 보험계약자의 동의 근거를 명확하게 규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