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업계에 따르면, 회계업계·학계·정치권 등은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정감사제 확대와 의무지정감사제 도입을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검찰이 딜로이트 안진의 전 이사를 구속하면서 회계업계의 빅4체제에 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생겼다.
검찰은 대우조선 분식회계를 묵인한 혐의로 전 안진회계법인 이사를 구속했다. 이에 대기업 부실감사와 관련해 회계법인 감사담당 회계사가 처음으로 구속되는 전례를 남겼다.
딜로이트 안진 관계자는 "검찰의 구속 사유와 회사측이 파악한 구속사유가 상이해 확인 중"이라며 "대고객 서비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없이 그리고 차질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안진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묵인해줬다는 게 정말 사실로 밝혀진다면 최소 감사업무 제한 조치, 최대 업무정지 조치까지 부과할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회계업계 일각에서는 회계사가 구속 기소된 점을 감안하면 딜로이트 안진이 업무정지 처분을 받고 빅4 그룹에서 제외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 경우 지정감사제를 확대할 수 있는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지정감사제 확대 혹은 의무지정감사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업 규모와 회계법인 규모별로 나눠 지정할 수 있는 회계법인 풀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빅4체제'에서 '빅3체제'로 바뀐다면 지정감사제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형회계법인이 빅3체제로 재편될 경우 안진의 일감을 떠안게 된다"며 "회계법인별로 떠안는 지정감사 기업의 수가 늘어나면 지정의 효과는 반감될 것이고 회계투명성 제고와는 반대로 오히려 부실감사가 양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감대상 기업의 수는 계속 늘어나는데 업계를 떠나는 회계사들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여서 회계감사 일손 부족이 심각하다"고 전제하고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남아있는 회계사들은 업무강도와 리스크 증대로 감사본부 근무를 꺼리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처럼 회계업계의 생태계가 취약해지고 있어 빅4체제에서 변화가 이뤄질 경우 지정감사제를 확대하자는 논의가 결국 흐지부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들은 '도시바 분식회계 사태'로 올해초 일본의 대형회계법인 중 하나인 EY가 일본 금융당국으로부터 업무정지를 받은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 회계업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EY의 업무정지 조치이후 대형회계법인들 사이에 EY 고객빼앗기 경쟁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으나 그러한 경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일본 회계업계에서는 일감을 받아들일 범위를 초과해 수임하면 감사품질이 저하될 수 있고 최소 BIG 4가 버틸 수 있어야 감사품질이 유지될 수 있다며 자정운동을 벌인 것으로 안다"고 소개했다.
안진이 업무정지 처분을 받지 않더라도 지정감사제를 확대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지정 외부감사인 선정은 회계법인의 규모와 감사 품질관리 수준, 감리지적 감점사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뤄지는데 안진은 이번 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감사 품질관리 수준, 감리지적 감점사항 등에서 마이너스를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저절로 옥석이 가려지는데 굳이 지정감세제 확대에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논리가 힘을 얻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회계법인 빅4 체제가 이번 일로 빅3로 재편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며 "앞으로 바뀔지도 모를 새로운 감사 환경에서 회계투명성을 높일 로드맵을 하루빨리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총희 청년공인회계사회 대표는 "일단 안진이 업무정지 조치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안진은 산동회계법인처럼 해체의 수순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현행 지정감사제는 신규 상장 기업이나 부실기업에 한해 금융당국이 일정 기간 외부감사인을 지정해주고 있다. 의무지정감사제는 매 6년 또는 9년동안의 자유수임 이후 3년의 지정감사를 의무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정감사제가 확대되거나 의무지정감사제가 도입되면 기업과 외부감사인 간 갑을관계가 해소됨으로써 회계법인이 보다 더 독립적으로 감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 회계투명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게 회계업계 내 다수 의견이다.
회계사 출신인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도 지난달 열린 분식회계 근절 토론회에서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정감사 분야를 살펴봐야 한다"며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정감사제 확대와 의무지정감사제 도입 실현에 힘을 실은 것으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