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벌어 하루 사는' A씨가 2억원이 넘는 세금을 부과 받게 된 것은 오며 가며 알게된 B씨의 부탁으로 이름을 빌려줬기(명의 대여) 때문. B씨는 A씨의 명의를 빌려 위장 사업장을 차려놓고 이른바 '카드깡' 으로 돈을 번 후 세금을 내지 않고 폐업한 후 잠적해 버린 것.
생각지도 못한 '봉변'을 당한 A씨는 국세심판원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심판청구를 제기했고 심판원은 '이례적으로' A씨의 주장을 인용해 국세청이 내린 세금부과 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심판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02년 일용 근로자로 일하면서 알게된 B씨의 부탁을 받고 '별 생각 없이' 자신의 명의를 빌려줬다. B씨는 A씨의 명의로 구청 및 세무서 등을 돌아 다니며 버젓이 영업신고증 및 사업자 등록증을 받았다.
B씨는 같은 해 '센세이션' 이라는 유령 사업장을 차려놓고 사실은 '카드깡' 영업을 통해 '떼돈'을 벌어들였고 2002년 2기분 및 2003년 1기분 부가가치세를 신고하지 않은 채 폐업한 뒤 잠적했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A씨는 거액의 세액이 찍힌 고지서를 받고 명의를 도용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국세청은 "사업자등록 신청시 제출한 신청서가 자필로 기재돼 있고 주민등록 사본, 영업신고증 등을 첨부해 A씨가 직접 사업자등록증을 받아간 사실이 있다" 며 A씨의 주장을 묵살했다.
A씨는 결국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고 심판원은 11일 A씨의 주장을 인용해 국세청 과세처분을 취소하라고 결정한 것. 심판원은 결정문을 통해 "A씨의 근로소득자료에 따르면 B씨가 카드깡으로 돈을 벌던 시점에 일용직으로 근무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심판원은 또 "A씨는 영구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생활보호대상자로 분류돼 있으며 지난해 말 잠적한 상태인 B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실도 확인된다" 며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할 때 A씨는 실제 사업을 영위한 것이 아니라 판단되며 B씨의 사술(邪術)에 속아 명의를 대여한 사실의 신빙성이 인정된다" 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사안과 같은 심판원의 결정은 매우 이례적인 것. 일반적으로 명의대여와 관련 '실질과세'는 어디까지나 원칙일 뿐 명의도용은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세관청인 국세청의 방침이며 국세심판원도 납세자 본인이 사업을 영위하지 않았다는 입증을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억울한 점이 인정이 된다 해도 현행 법 해석상 세금을 부과할 수 밖에 없다는 것. 특히 일정한 대가를 받고 명의를 대여해 주는 등 법망을 피해 세금을 빼먹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일일이 억울함을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심판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번 사안은 조사결과 어느 정도 신빙성이 인정돼 인용해 준 매우 드문 사례" 라며 "명의대여나 도용은 명의 대여자가 실제로 사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할 때만 피해사실을 인정해 주고 있다" 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