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입차 딜러들은 고통을 강요받고 있다. 해외 자동차회사의 한국 현지법인은 딜러들의 만성적인 적자를 딛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심지어 본사 차원의 소비자만족도 조사까지 조작하는 등 철면피에 가까운 비도덕적 영업행태를 저지르고 있다."
국내 수입차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BMW그룹코리아 딜러로 사업을 했던 K씨를 만났다. 그는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억눌렀던 울분을 쏟아냈다.
그가 전하는 요지는 한마디로 'BMW코리아는 전제군주에 가까운 권력을 휘두르며 딜러들을 옥죄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폭로는 충격적이었다.
K씨는 12년 이상 수입차 업계에 몸담아온 국내 수입차 1세대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말하듯 `강제로 퇴출당해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업계에선 수입차 한국법인(임포터;importer)들이 딜러들에 불평등 계약과 영업을 강요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K씨가 전해준 BMW그룹코리아의 횡포와 그에 따른 딜러들의 고통이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딜러 고통 속에 고속질주 〓 K씨는 "지난해 BMW그룹코리아 10개 딜러들은 일제히 적자를 냈다. 이를 합치면 대략 3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딜러들을 추산하고 있다. 2003년에도 대부분 적자를 냈다"고 말했다.
"BMW그룹코리아의 성과는 놀라운 것이다. 럭셔리 모델로 특정 수입차 시장에서 1위를 거머쥐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시장에서의 실적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당연히 그룹 본사에서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으며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딜러들의 희생을 통해 이룬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강력하게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지 않냐'고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머리띠를 두르고 본사 찾아가 항의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냐. 하지만 우리는 '을'일 뿐이다. '갑'에 잘못 보여 득될게 전혀 없다.
BMW그룹코리아가 딜러들을 통제하는 수단은 다양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신차 배정 자체에서 차별한다는 것. 인기 모델 배정에서 밀릴 경우 영업에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밖에 각종 지원, 딜러계약 연장 등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어 밉보일 경우 퇴출을 각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 법인은 딜러들에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시승차 배정, 마케팅 비용 지원 등에서 임의 잣대를 적용해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한다. 딜러들은 불만이 있어도 참을 수 밖에 없다"
◇"우린 구조적으로 적자를 강요받았다" 〓 통상 수입차 딜러의 마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출액 대비 15~20% 이상의 마진율이면 수익을 충분히 보장하는 영업이익률이 아닌가.
그러나 K씨의 설명은 달랐다. 딜러들 모두가 적자를 봤다는 것. "BMW그룹코리아가 과욕을 부리고 있는 것이 최대 원인이다. '땡처리식'으로 판매를 강요해 구형 모델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신모델을 대량으로 들여오고 있다. 올초 전세계 히트 모델을 의욕적으로 도입해 실제 히트를 치고 있지만 국내 딜러들은 여전히 올들어서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요약하면 '땡처리식 판매 강요→재고 및 금융비용 증가→과당 출혈 경쟁 및 할인→만성적자'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BMW그룹코리아는 올해 △연간 1만대 판매 △한국 수입차 시장점유율 1% △매출 1조원 등 의욕적인 경영목표를 제시한 상태다. K씨의 주장은 BMW그룹코리아의 공격경영이 현실과 딜러들의 고충을 무시한 것이고, 이에 따라 적자 누적이라는 악순환이 뿌리내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딜러간 과당경쟁으로 판매 가격과 조건이 들쭉날쭉, 최종적으로 고객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모럴 해저드식 거품 경영 〓 K씨는 "BMW그룹코리아는 그룹 본사에서 실시하는 고객소비자만족도 조사에서 매번 전세계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당연하다. 만족도 조사를 위해 본사에 보내는 차량 판매 고객 정보 중 고객란에 영업사원 전화번호를 기록하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그룹 본사는 만족도 조사시 해당 현지법인이 보낸 고객 명단에서 샘플링을 통해 50개 항목에 걸쳐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하는데, 고객 전화번호에 영업사원 등 회사 관계자 번호를 적는 경우가 많아 모든 평가에 '올(All) A'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이는 관행으로 굳어있다. 딜러들은 명단 제출시 '거부할 수 없는 협조요청'을 받는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고객 이름 옆에 영업사원 등의 번호를 기입할 수밖에 없다."
K씨는 "이 같은 수완을 통해 한국법인이 그룹의 전세계 현지 법인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자리잡았다. 강제 밀어내기식 판매 증대, 시장점유율 1위 유지, 사기에 가까운 고객만족도 세계 1위 등이 그 발판"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BMW그룹코리아는 이미 이성을 잃어 버렸다. 딜러들이야 죽건 말건 상관없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딜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을 때 본사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릴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다."
◇BMW그룹코리아 "있을 수 없는 일"〓 한국법인측은 K씨의 폭로에 대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법인 관계자는 고객만족도 조사와 관련해 "예전에는 상당히 좋지 않았지만 딜러들에 고객 서비스 개선을 독려했고 이를 통해 그룹의 최상위로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딜러에 영업사원 등의 전화번호를 거짓 기재하라고 종용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딜러들이 스스로 욕심을 내 그런 것일 수는 있다"고 해명했다.
딜러별 고객만족도 성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 지원하고 있는데, 딜러들이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스스로 조작했을 수는 있지만 법인 차원에서 종용한 적은 없다는 설명이다.
BMW그룹코리아 관계자는 "전화 조사 뿐 아니라 서비스 워크숍을 직접 찾아 고객에 현장 인터뷰도 진행하는데 어떻게 조작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한편 한국법인 측은 지난해 딜러들의 적자와 관련해 "모든 딜러의 경영실적이 적자를 기록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다만 환율하락 등에 따른 충격으로 딜러들이 고전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