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의 조세회피처를 통한 세금탈루 문제가 전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근본 원인은 수익이 발생한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조세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국가 간 세법 차이, 조세조약 또는 국제조세제도의 미비점 등을 파고들어 세금을 회피해 오고 있다는 점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사회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전 세계는 지금, '구글세' 전쟁 中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선 구글 등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세금 추징 관련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구글은 이탈리아 국세청에 지난 10여년간 내지 않은 세금 3억600만 유로(한화 약 3800억원)을 납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 정부도 지난해 1월 구글에 대해 1억3000만 파운드(한화 약 1900억원)의 체납 세금을 추징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구글의 자국 지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선 세무당국과 구글이 체납 규모와 관련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체납 추징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러시아, 호주 등에서도 구글에 대한 세금 추징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기업의 세금 문제는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아일랜드 정부가 애플에 과도한 세금혜택을 준 것은 EU 법률 위반이라며 애플이 아일랜드 정부에 130억유로(약 16조원)의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아울러 유럽연합집행위는 애플과 같은 혐의로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룩셈부르크 법인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이미 각국은 글로벌 기업의 세금 회피에 대한 대응강도를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는 영국과 호주다.
영국 정부는 지난 2015년 4월 '외국계 기업이 영국에서 번 돈을 다른 국가로 우회하면 이에 대해 25%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른바 '구글세'를 세계 최초로 처음 도입했고 실제 세금을 추징하기도 했다.
호주 또한 오는 7월부터 구글세를 시행해 수익을 일부러 타국으로 우회할 경우 법인세(30%)보다 높은 40%의 세금을 부과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는 법이 만들어지는 등 유의미한 움직임은 미미한 상황이다. '시도'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부 '꽝'이 난 상태다.
일정 요건에 해당하는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외부감사를 받도록 해 회계 투명성을 높이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은 지난 2014년 1월 발의됐다.
같은 해 12월에는 글로벌 IT기업에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인세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국내에서 프로그램이 판매되는 경우 이를 외국 법인의 국내 원천소득으로 보자는 것이 이 법의 골자였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법안들은 총선, 조기대선 등 각종 정치이슈에 묻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아예 폐기되어 버리거나 계류 상태에 머물로 깄는 형편이다.
"정보 확보 우선…과세의지 강화하고 '고정사업장' 범위 확대 필요"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 7월부터 구글과 애플 등이 앱 마켓에서의 애플리케이션 거래로 발생한 소득에 부가가치세를 징수하는 등 그동안 미비했던 부분을 차근 차근 보완해가고 있다.
다만 영국과 호주의 경우 처럼 조세회피처로 소득을 우회시켜 세금을 회피하는 부분을 틀어막을 수 있는 대책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영국 등이 도입한 형태의 세법을 도입할 경우 시장 철수 등 경제의 충격파가 전해질 수 있다는 측면을 고려, 일단은 세계적 추세를 지켜본 후 움직이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은 세법 도입 보다는 다른 나라와의 조세정보교환을 우선적으로 체결해 조세회피에 대한 '정보수집 루트' 및 '감시망'을 촘촘히 짜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을 단속하기 위한 세계적 프로젝트인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BEPS는 다국적기업의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문제를 말하는 것으로, OECD와 G20은 지난 2015년 BEPS 프로젝트의 15개 권고안에 합의하고 지난해에는 프로젝트 이행 및 모니터링을 위한 포괄적 이행체제를 마련했다.
특히 권고안 중 이전가격 문서화는 국내 세법에도 이미 반영이 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일정 매출액 이상 다국적 기업들은 국가별보고서, 개별기업보고서, 통합기업보고서 등 이전가격 자료를 반드시 제출해야 하며, 국가별보고서는 2018년부터 다자간 협정 및 양국 간 개별협정 등을 통해 매년 다른 나라와 교환된다.
과세당국은 다국적 기업의 국제적 소득분배, 경제활동, 납세현황 등에 관한 정보를 확보하게 되어 조세회피 목적의 소득이전 및 거래 파악이 사전에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바하마, 버뮤다, 쿡아일랜드 등 10개국은 조세정보교환협정이 시행되고 있으며, 바누아투, 코스타리카 등과는 협정에 정식 서명을 마친 상황이다. 이 밖에 마카오, 라이베리아, 세인트루시아 등 가서명을 마친 3개국은 해당부처 간 합의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들 국가와 조세정보교환협정을 맺는 데는 향후 해당 국가 내에서 조세회피 의혹이 불거졌을 때 과세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탈세자들을 잡기 위한 일종의 그물망을 설치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행보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다만 과세인프라를 만들어 가면서 영구과 호주의 경우와 같은 직접적인 과세방안을 현행 세법에 시급히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정보 확보 문제가 중요하다. 글로벌 기업 문제 있어서 각 국과 상호 정보교환 제도 마련하고 있는데, 거래내역 확보를 통해 한국에서 벌어들인 소득파악을 충분히 한 후 조세행정이 촘촘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보 교환 제도가 아무리 있어도 과세하려고 하는 의지와 실제 세밀한 조세행정을 통한 과세자료 확보가 제대로 되어있어야 빈틈없이 과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우리나라 세법상 고정사업장 규정이 애매모호하다. 기본적으로 전자상거래나 IT기업은 한국에 사업장을 둘 이유가 없다.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 처럼 물적 설비가 없어도 우리나라에 고정사업장이 있다고 보아 과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거나 개념을 확대해서 과세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