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법, 세법 두루 쓰이는 용어이다. 조세, 세, 세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무슨 뜻인지는 모두가 다 아는 일이지만 그 역사를 되돌아 봐야 제대로 설명이 된다. 화폐경제가 자리 잡지 못했던 근대까지 세금이라는 용어는 쓰이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물적 부담은 생산물이지 금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양 문화권에 속해있던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세제의 근간은 중국에서 왔다. 조선의 경우 국가에 대한 백성의 재정부담은 당(唐)에서 확립한 조(租)·용(庸)·조(調)가 큰 틀이었다. 조세는 조(租)와 세(稅)의 두 한자의 결합어이다. 모두 벼 화(禾) 변을 쓴다.
사전에는 조의 뜻은 조세, 온갖 세납을 통틀어 이르던 말, 세는 세금, 온갖 세납을 통틀어 이르던 말로 나와 있어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처럼 읽힌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와 세는 모두 관청에 바치는 농작물이었지만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조와 세는 구분 없이 관청에 바치는 벼, 즉 전세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조세체계의 근간인 조(租)·용(庸)·조(調)는 각기 세(稅)·역(役)·공물(貢物)로 이해하면 된다. 조(租)는 토지에 대하여, 용(庸)은 사람에 대하여, 조(調)는 호(戶)에 대하여 부과되는 부담이었다. 당시 농업이 산업의 중심이었으므로 조(租)는 현물인 곡식을 내는 것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토지에 부과되는 조(租)가 조(租)와 세(稅)로 대별되었다. 조(租)는 경작자가 수확의 일부를 공전(公田)의 경우에는 국가에, 사전(私田)의 경우에는 전주(田主)에 바치는 것을 의미하였고, 세(稅)는 전주(田主)가 경작자로부터 받은 조(租)중에서 일부를 국가에 바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세(稅)는 소득의 일부를 국가에 납부하는 현대적 조세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세종의 공법(貢法) 시행 이전까지 경작자는 조(租)의 경우는 수확량의 10분의 1정도, 세(稅)는 그 15분의1 정도였다. 조의 경우 10분의1 비율은 구약성서에서 나오는 십일조가 중세유럽 세율의 기준이 된 것과도 같아 자못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성종조에 이르러서는 공신전, 별사전의 증가로 토지가 부족하게 되어 과전법이 유지되지 못하고 관수관급법(官收官給法)이 시행되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전세(田稅)를 관부에서 징수하고 관리들에게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바뀜에 따라 조(租)와 세(稅)의 구분이 없어졌다.
이러한 연유로 조세라는 단어가 현재의 의미로 정착된 것은 갑오경장 이후 홍범 14조(1895년)에서부터이다. 제6조는 “부세(賦稅)는 모두 법령으로 정하고 명목을 더하여 거두지 못한다.” 제7조 “조세를 부과와 징수 및 경비를 지출하는 것은 모두 탁지아문에서 관할한다.”라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비로서 근대적 의미의 조세와 조세법률주의의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세금은 어떠한가? 세금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것은 1875년 조선과 일본 사이의 강화도조약 체결에 따른 “조선의 여러 항구들에서 일본인들의 무역규칙”이라고 한다. 규칙 제7조에서 항세(港稅)를 규정하면서 이를 세금으로 지칭한 것이 최초이다.
이는 조약을 강요한 일본의 용례에 따라 쓰이게 된 것이다. 오늘 일반에게는 조세라는 개념보다는 세금이라는 용어가 익숙하고 더 알기 쉽다. 세금은 당연히 돈, 금전, 화폐를 뜻한다는 것도 상식이 되었다. 조세, 세, 세금이라는 용어의 변천은 대충 이러하다. 이제 이를 굳이 구분하여야할 이유는 없어지게 되었으나 여전히 함께 쓰이고 있는 만큼 세금을 다루는 이에게는 그 연혁을 알면 궁금증이 풀릴 것 같다.
이 컬럼은 오기수 교수의 [조선시대의 조세법]의 도움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