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는 안 그랬어", "세상 많이 좋아졌다", "왕년에 내가 말이야…"
젊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이런 말을 하는 상사는 소위 '꼰대'로 불리며 젊은 부하직원들의 '기피대상'이 되곤 한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개인주의가 심한 젊은세대들의 생각과 행동이 마음에 안 들수 밖에 없다. 젊은세대도 기성세대가 마뜩잖기는 마찬가지.
이런 세대갈등은 사회는 물론 학교, 군대, 회사 등 어느 조직에서나 발생하고 있다.
국세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국세청은 신규직원들의 전문성 부재와 세대갈등이 겹쳐지면서 조직의 생산성이 저하되는 문제로 비화, 국세청 차원에서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전우애' 넘쳤던 국세청, 왜 이렇게 변했나
국세청은 조직원간 끈끈하게 뭉쳐있는 '전우애'가 뛰어난 조직. 어떤 사건이 터지면 학연, 지연 등을 총동원 조직을 위해 발로 뛰며 헌신하는 모습은 국세청 특유의 조직문화로 여겨지고는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해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 특히 젊은세대들에게 퍼진 개인주의가 신규직원들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되면서 일선 세무서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이 회계, 세무 등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들어온 신규직원들의 전문성 부족 문제와 맞물리면서 "요새 신규직원들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문제의 원인을 '신규직원'에게서만 찾기는 무리라는 여론도 있다.
전문성 부족은 신규직원들의 개인적인 능력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구조적·제도적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MB정부 시절, 고교 졸업생에게도 공직 진출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세무·회계학을 선택과목으로 돌린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전문성 부재는 교육을 늘려 강화하는 방안으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고 국세청 내부에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교육을 늘리려고 애쓰고 있고 실제 신규직원들에 대한 교육도 대폭 늘렸다.
국세청은 지난 2015년부터 신규직원에 대한 기본·실무교육을 6주에서 12주로 확대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만성적인 '인력부족'으로 신규직원들이 마음 놓고 교육을 갈 수 없는 현실이다. 위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 치이고 부족한 전문성을 메우기 위해 교육을 가기에는 옆자리 동료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인력부족에... 사라지는 '선후배의 정(情)'
국세청의 인력부족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지능적 탈세와 역외탈세 등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인재가 필요한 것은 물론 장려금 신청·심사 업무까지 국세청 전반에 걸쳐 업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국세청 인력은 제자리에 머물고 상황이다.
지난 2015년 자영업자까지 확대되는 근로장려금의 업무증가로 국세청은 장려금 담당인력은 820명 요청했지만 확정된 인원은 절반도 안되는 327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직원 뿐 아니라 기존에 있던 직원들도 업무 처리를 하느라 있는 시간을 다 쓸 수밖에 없다.
종합소득세 신고·납부와 장려금 신청 업무가 겹치는 5월에는 하루종일 전화상담만 하느라 정작 내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마당에 신규직원들까지 챙길 시간적인 여유도 없는 셈이다.
동료와 상사 눈치에 교육도 제대로 가지 못한 신규직원들은 선배들의 조언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으면서 점점 고립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비선호 지역의 세무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민원이 많거나 상대적으로 외진 지역의 세무서는 기피대상이 되기 마련인데, 이런 곳은 대부분 선택권이 없는 신규직원들이 가고 있다.
비선호 세무서로 꼽히는 인천의 모 세무서의 경우 개인납세1~2과 모두 팀장을 제외한 6급 직원이 1명 뿐이다. 8~9급 직원들이 다수를 차지해 업무처리를 하는데 있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세무서 개인납세과 소속 9급 직원들만 26명이다.
반면 선호 세무서로 꼽히는 경기지역 모 세무서의 경우 개인납세1과와 2과에 팀장을 제외한 6급 직원이 3명 있었으며 9급 직원들은 8명이다. 7급 직원들은 비선호 세무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다. 세무서 규모나 관내 납세자 수, 세수 규모가 달라 일대일 비교는 어렵지만 비선호 세무서와 선호 세무서 간의 직원 분포는 대부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제해결' 나서보지만…아직은 역부족(?)
국세청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있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후배 간의 '멘토링'을 적극 장려하고 6급 팀장 교육 강화에 나섰다.
선배가 후배를 적극 챙겨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취지다.
선배 직원 1명이 멘토가 되어 신규직원을 챙겨주며 업무에 관한 부분이나 조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어려움 등을 조언해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하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의도다.
임 국세청장은 "후배 직원을 아들처럼 생각하라"며 멘토링을 적극 장려하고 있고 일부 직원들은 '멘토-멘티' 지정이 효과가 있다고도 얘기한다.
인천지역에서 멘토를 했던 한 직원은 "신규직원들도 같이 저녁을 하며 얘기를 하면 다 똑같다. 선배들과 대화하며 업무에 대한 조언도 듣고 싶고 회사 생활 힘든 것도 얘기하고 싶은데 다들 업무에 여유가 없어 후배들에게 신경써 줄 여유가 없다"며 "선배들의 관심에 목 말랐다며 우는 직원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배와 후배 간의 멘토링이 성공한 것은 국세청 내에서 그리 흔한 사례는 아니다. 다들 바쁜 업무에 치여 신규직원에게 관심을 가질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직원들이 상당수다.
다른 직원은 "후배를 챙겨주고는 싶지만 사실 내 일 하기도 바빠 챙겨 줄 시간도 없다"며 "인력은 부족하고 일은 많은데 저녁을 같이 먹으며 얘기를 할 시간이 어디있느냐. 일하면서 같이 간식 먹거나 할 때 대화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6급 팀장들의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전국 세무서 팀장들에게 직무교육을 시키고 오는 9월 개인·법인·재산·조사 1팀장·조사관리팀장 등 주요보직 팀장에 대해서 팀장요원 자격시험을 실시하기로 한 배경도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타개해 보기 위한 선택이라는 전언이다.
표면적으로는 6급 팀장들의 역량을 끌어올려 전문성을 높이고 조직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지만 그 이면에는 퇴직할 날만 기다리며 나태해진 팀장들을 단속하는 것과 더불어 업무미숙으로 헤매이고 있는 부하직원들을 독려해 팀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의도가 있다는 후문이다.
부하직원을 챙기지 않는 팀장들 때문에 조직의 업무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며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더 이상 두고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멘토링 강조나 6급 팀장 역량을 강화한다고 해서 단시간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다"며 "결국 인력부족과 세무·회계가 선택과목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방안만으로는 역부족일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