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 위치한 DHL허브창고.
고객지정사 일괄 인계 서비스와 관련해 DHL이 부과한 수수료는 당연히 화주가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DHL의 가격정책으로 인해 애가 타는 건 화주가 아니라 관세사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관세사 업계에 따르면 인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 수수료 부담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화주들은 DHL에서 통관 및 국내운송을 알아서 하게 두길 바란다.
문제는 화주가 DHL에 무료 통관을 맡기면서 물품의 사후관리는 기존에 거래해 오던 관세사에게 요구한다는 것.
관세사 입장에선 물품의 재수출이나 환급을 위해선 물품의 이력이 담긴 서류가 필요한데, DHL에 서류가 묶여 있으면 사후관리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수수료 때문에 사후관리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거래처를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화주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결국 화주의 수수료를 대리납부하면서 까지 물품의 사후관리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관세사들의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 관세사 업계 관계자는 "우리 사무실에만 사후관리가 필요한 특송물품이 한달에 50~60건 정도 있다"면서 "화주가 굳이 수수료를 내면서 통관하지 말라고 했는데 DHL에선 사후관리를 못한다고 했더니 그럼 사후관리만 우리 사무실에서 해달라고 한다. 서류를 인계 받아야 사후관리를 할 수 있는데, (특송 외에)다른 물건도 있어서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DHL의 터무니 없는 수수료 정책이 다른 특송업체에서도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2010년경 DHL과 FEDEX 등 특송업체에서 서류를 인계하면 물품운송을 안 해준다는 정책을 내놨다가 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정책을 접은 경우도 있다. 특송물량은 갈수록 늘어날 텐데 특송업체들의 부당한 정책을 정부차원에서 제대로 감시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무리한 정책에 의혹만 무성…
◆…DHL 지정 관세사무소가 위치한 DHL허브창고 4층. 이 건물 4층에는 DHL 사무실과 지정 관세사무소 사무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선 DHL이 지정 관세사무소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이 같은 정책을 펼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DHL 지정 관세사무소는 다른 화주의 물품은 취급하지 않고 오로지 DHL코리아 특송물품만 취급하고 있으며 지난해 월평균 11만건(연 132만건)을 신고해 월평균 3억여원(연 36억원)의 통관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사 1명이 등록된 개인 관세사무소 치곤 꽤 많은 수익을 내고 있는 셈.
DHL은 지정 관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관세사법에 따라 설립된 독립된 관세사로 관세사의 운영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며 "DHL은 글로벌 본사 정책에 따라 공정하게 업체 선정을 하고 있고 경쟁력 있는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DHL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직원이 지정 관세사무소에서 전무로 근무하고 있는 점 등 DHL이 사실상 지정 관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킬만한 정황은 무수히 많다는 게 관세사 업계의 시선이다.
DHL 지정 관세사무소는 인천공항 DHL허브 건물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세사무소 직원들이 DHL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고 있는 점도 정황 중 하나다.
몇몇 전문가들은 지정 관세사무소와 DHL이 사실상 '한 몸'인 것으로 판명날 경우, DHL의 가격정책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현행법은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인계비용을 부과해 사실상 지정 관세사무소에 업무를 맡기도록 강제하고 있으므로 거래강제 중 '끼워팔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설령 끼워팔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지정 관세사무소와 거래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므로 기타의 거래강제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3호의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DHL은 이 같은 해석에 대해 "DHL의 모든 정책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시행되며,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준수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