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차명계좌 '주먹구구' 대응에 정부 신뢰 먹칠

◆…자료=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실

정부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 처리에 '주먹구구'식 대응에 나서 세수 확보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고조되고 있다.

법제처는 최근 이건희 회장이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에 개설한 27개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의 길을 열어줬다.

이 회장의 27개 차명계좌는 삼성증권 4개, 신한금융투자 13개, 미래에셋대우 3개, 한국투자증권 7개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은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정확한 숫자와 차명계좌 금액, 과징금 부과를 위한 일정 제시 등을 밝히지 않은채 구렁이 담넘어 가듯 적당히 넘어가려는 자세다.

또한 세수의 책임을 지고 있는 과세관청도 이건희 차명계좌와 관련한 예상 세금 징수액 추정이나 세무조사 등에 대한 뚜렷한 방향 제시 없이 청와대나 정치권의 눈치만 살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조준웅 삼성 특검이 밝힌 이건희 회장 차명계좌 1197개 외에 32개의 차명계좌를 발견했지만 언론을 통한 공식 발표보다는 정치권에 자료를 넘겨주는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했다.

금융당국이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투명하게 밝히고 공명정대하게 일을 진행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먼서 스스로의 신뢰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임원들 통장에 4000억원을 넣어 보관하고 있다는 혐의로 이 회장을 피의자로 입건하기도 했다. 경찰이 이 회장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면서 차명계좌 260개를 더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개혁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 회장의 차명재산이 10조원 상당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경찰이 찾아낸 차명계좌를 더하면 차명계좌가 1500개에 육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의 전수조사 결과 이 회장의 차명계좌 32개를 추가로 발견됐다.

금감원이 발견한 이 회장 차명계좌들은 1987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2007년까지 개설됐는데 1229개 가운데 1133개가 증권계좌, 나머지 96개가 은행계좌로 되어 있다.

1133개의 증권계좌 중 삼성증권에 개설된 차명계좌가 918개로 가장 많았고 신한금융투자 85개, 한국투자증권 65개 등의 순이다. 은행계좌는 우리은행 53개, 하나은행 32개 등이다.

◆…자료=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실

관련부처간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처리를 둘러싼 이견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이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계좌기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어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에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제처가 이 회장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의 길을 터줬지만 금융당국은 스스로 과징금 부과를 포기하려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의 상당수 차명계좌가 금융실명제 이후에 개설된 데 대해 소득세와 과징금 부과 문제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박찬대 의원은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98%가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 개설되는 대담함을 보였다”면서 “계열 금융회사를 사금고처럼 이용해 차명재산을 운용한 재벌 총수에 대해 규제와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소득세와 함께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이 회장은 수조원이 넘는 세금을 물어야 한다.

금융당국과 과세당국이 협심해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세 논리를 정당화하고 세금으로 이끌어낸다면 수조원의 세수증대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과세근거를 확보하고도 제대로 세금도 징수하지 못한다는 국민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정부당국이 시급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은 과징금 부과 시효가 10년이기 때문에 채 두달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부과제척(과세) 기간은 차명계좌가 적발된 2008년 4월 17일부터 10년이 되는 2018년 4월17일이면 만료되고 더이상 과세할 법적 근거를 잃게 된다.

금융위나 국세청 모두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시효가 지난 후 금융당국이나 과세관청이 이건희 회장과 법적 논쟁을 벌인다해도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가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문제점을 알면서도 부처간 협조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마무리한다면 정부에 대한 불신은 좀처럼 사그러지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