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승소해도 '산 넘어 산'…'반쪽 행정소송' 개정 요구 봇물

서울행정법원 20주년 학술행사…행정소송법 개정 필요
의무이행소송·예방적 금지소송 도입 등 개정방향 논의

육군 예비역 A씨는 군 복무 중 소총 분해·결합 과정에서 왼손 새끼손가락을 다쳐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하자 2009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2년 만에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유공자 판정을 받지 못했다.

손가락 상이와 군 복무 간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 당시 법원의 판단이었지만 보훈청이 법원 판결 이후 A씨에 대한 신체검사를 진행한 결과 상이 정도가 상이등급기준에 미달한다는 새로운 이유로 국가유공자등록을 재차 거부했기 때문이다.

A씨는 보훈청의 2차 거부처분에 반발해 다시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새로운 처분 사유에 의한 것으로 처분 사유가 적법하다고 판단해 A씨의 청구를 기각했고 2015년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A씨가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가를 상대로 싸웠지만, 국가유공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이처럼 현행 행정소송법 제도하에서는 A씨와 같은 사례가 언제든지 생길 수 있어 의무이행소송을 도입하는 등 행정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 전문가들은 지난 7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서울행정법원 개원 20주년 기념 학술행사 '스무 살의 행정법원, 새로운 도약'에서 현행 행정소송의 권리구제 기능 한계를 지적하고 의무이행소송 등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서울행정법원 김정중 부장판사(행정14부)는 현행 '거부처분 취소소송'이 반쪽짜리 권리구제 수단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의무이행소송 도입을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당사자가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행정청이 거부처분 사유로 삼은 부분의 적법성 여부만이 유효한 구제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 처분의 발급의무 존부에 관한 분쟁이 하나의 소송절차로 해결되지 못하고, 새로운 소송절차가 반복될 수 있다"면서 "이처럼 신청인이 여러 차례 소송절차를 반복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 차원에서도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특히 행정청이 민원에 대해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는 경우 제기할 수 있는 '부작위위법 확인소송'의 경우 '반의반 쪽'짜리 권리구제 수단이라고 꼬집었다.

소송 당사자가 부작위위법 확인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행정청이 거부처분을 하면 당사자는 다시 '취소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 김 부장판사의 지적이다.

김 부장판사는 이러한 현행 행정소송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법원이 행정청에 직접 처분의 이행을 명령할 수 있는 '의무이행소송'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의무이행소송은 거부처분 취소소송 등에 비교해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을 더욱 충실히 한다"며 "그동안 행정재판 전문성이 강화된 점을 고려할 때 국회는 급부행정의 수요자인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행정소송법 개정 절차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판결이 확정되기 이전의 구제수단인 '가구제'와 행정청에 일정한 처분이나 직무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예방적 금지소송' 도입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기조 발제를 맡은 정하중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금의 행정소송제도는 복잡화·전문화·세분화되고 있는 행정현상에 적응능력을 상실했다"며 "민주화에 따라 급격히 향상된 국민의 권리의식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행 행정소송법의 전면 개정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법관을 지낸 이홍훈 서울대 이사장 역시 "현행 행정소송법은 1994년 일부 개정된 이후 큰 변화가 없다"면서 "변화된 행정의 다양한 현실을 반영하도록 행정소송법을 개정해 소송제도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김용석 서울행정법원장을 비롯해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김동건 한국행정판례연구회장 등 법조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